최근 몇년간 내게 일어난 일 중 가장 좋은 것은 언니들과 가까워진 것이다. 감탄, 존경, 질투, 거부감, 즐거움, 애착, 두려움, 기대, 실망, 불편함, 거리감, 이해할 수 없음, 답답함, 슬픔, 안쓰러움, 편안함… 다양한 감정을 거치면서 나는 세대가 다른 여자들과 친구가 되는 법을 알아갔다. 그들이 나의 어머니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어떤 역할도 지우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들이 자애로운 어머니 역할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버텨준 덕분에 한없이 인내하고 이해하는 어머니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한 여성에게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 알았다.
언니들과의 관계는 숨겨진 보물섬을 찾아가는 비밀지도를 만난 것과 같았다. 배움은 언니들에게서가 아니라 언니들과 나 사이에서 얻어졌다. 언니들과 만나고 있을 때보다 언니들과 만나지 않고 있을 때 더 많이 배웠다. 엄마와는 왜 이런 관계를 맺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던 것일까?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세대에 걸쳐 전수받는 일이 여성들 사이에서 끊긴 느낌이 있다. 전에는 왜 언니들과 만날 수 없었을지 생각해본다. 10대와 20대 때 내가 만날 수 있는 어른은 대체로 남성이었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보는, 존경할 만한 사람처럼 보이는 어른이 대체로 남성인 까닭이었다. 남성 어른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나는 그들이 내게 주는 사랑은 내가 원한 사랑도, 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사랑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언니들이 아무리 짜증스러워도 이들과 관계를 잘 맺기 위해 노력해보는 일이 비교적 안전했다.
교양 있는 언니, 천박한 언니, 풍만한 언니, 왜소한 언니, 수더분한 언니, 까탈스러운 언니, 신경질적인 언니, 말 없는 언니, 모양 빠지는 짓은 안 하는 언니, 아무 데서나 트림하는 언니, 남편 욕하는 언니, 결혼한 여자 흉보는 언니, 싸가지 없는 언니, 힘들 때마다 등장하는 언니, 말을 돌려서 하는 언니, 은근히 자랑하는 언니, 맨날 당하고 사는 언니…
나는 언니들의 모습을 차곡차곡 기억해 두었다가 사는 것이 너무 힘에 부친 어느 순간에 꺼내서 그 언니의 모습을 뒤집어쓴다. 그리고 언니처럼 말해본다. 나의 경우 저속하고 막말하고 자신이 가진 공격성을 감추지 않는 중년 여성으로 빙의해보는 것이 제일 도움이 된다. 억척스러운 태도를 갖추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는 것 같고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가볍고 웃기게 느껴진다. 언니들을 오래 지켜보면서 젊음과 나이 듦에 얼마나 많은 오해가 깃들어 있는지를 실감했다. 세상은 여성이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치는데, 내 눈에 나이 든 여성은 너무도 깊고 아름다워 보였다. 나이 듦이 저런 것이라면 나이 듦은 좋은 것이구나. 내 앞에 놓인 길이 저런 길이라면 천천히 걸어봐도 좋겠다 생각했다.
여성들 간에 감정이라고 흔히 여겨지는 질투심이나 경쟁심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선택받는 입장으로 여길 때 생긴다. 내가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옆자리에 앉은 여자는 누군가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때 기회는 열리고 이야기는 끊임없이 확장된다.
아줌마 빙의로도 해결이 안 될 때는 목욕탕에 간다. 자신의 몸을 정성껏 닦고 보살피는 여자들을 본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이 여자들은 알고 있다.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자유로운 몸의 움직임을 보다 보면 이런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몸이었구나, 정신이 차려진다. 그 몸이 목욕탕 바깥의 몸과 얼마나 다른지에 놀라면서. 그렇게 물에 몸을 담그고 몸을 씻고 머리를 말리고 뽀얘진 얼굴로 문밖으로 나서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힘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