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인문학] '4월이 가면'... 패티김과 길옥윤의 사랑과 이별

2025-04-29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세상에는 하늘의 별보다도 많은 러브 스토리가 존재한다.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러브 스토리부터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러브 스토리도 있다. 4월의 끝에 서면 생각나는 러브 스토리가 있다. 바로 패티김의 노래 '4월이 가면'에 얽힌 러브 스토리가 그것이다.

한국 가요사에서 몇 안 되는 디바로 불리는 패티김은 1963년 데뷔하여 미국에 진출, 양국을 오가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66년 봄이었다. 길옥윤은 국내 활동을 재개한 패티김에게 작곡가와 가수 이상의 감정이 생겼다. 당시 패티 김은 4월이 지나면 다시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내성적 성격의 길옥윤은 사랑의 고백 대신 패티김의 출국을 막기 위해서 곡을 쓰기 시작했다.

4월 어느 날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앞 여관에서 곡을 쓴 길옥윤은 뉴코리아호텔에 투숙한 패티김에게 전화로 노래를 들려줬다. 그 노래가 '4월이 가면'이었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얼굴 / 잠이 들면 꿈속의 사랑/ 4월이 가면 떠나갈 사람/ 5월이 오면 울어야 할 사람/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 사랑한다면 가지를 마라/ 날이 갈수록 깊이 정 들고/ 헤에보면 애절도 해라….'

절절한 사랑 고백에 패티김이 흔들렸다. 4월이 가고 5월이 왔다. 패티김은 미국 비자 문제가 꼬여서 출국을 포기했다. 그 무렵 전방 위문 공연을 다녀오던 패티김과 길옥윤은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공연이 끝난 뒤 군 책임자와 차를 마시다가 원래 타기로 했던 버스를 놓치고 다음 차를 탄 것이다. 그런데 앞서 갔던 버스가 사고가 나서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두 사람은 이 사건으로 서로가 운명임을 예감했다.

패티김이 먼저 청혼했다. 그해 1966년 6월 약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12월 10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종필 공화당 의장의 주례로 3천여 명의 하객이 참석했다. 이날 결혼식장에서 두 사람은 결혼 기념 싱글 앨범을 하객들에게 선물했다. 길옥윤이 작곡하고 패티김이 노래한 2곡을 수록했다. '4월이 가면'과 '사랑의 세레나데'였다.

'지난 6월 7일 약혼을 피력한 후 오늘 결혼식에 여러분을 모시게 된 것을 무상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오늘날까지 저희들을 아껴 주신 여러 어른들과 친지들에게 삼가 감사드립니다. 저희 둘이 마음과 힘을 합하여 여러분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새삼 다짐합니다. 앞으로도 변함없는 지도와 편달을 아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결혼 이후 두 사람은 콤비를 이뤄 '그대 없이는 못 살아', '사랑이란 두 글자', '이별' 등의 히트곡을 내놨다. 그러나 패티김은 술과 도박에 빠진 길옥윤을 견디지 못하고 6년 만에 이혼했다. 패티김은 훗날 이혼 사유에 대해 "작곡을 잘하고 노래를 잘한다고 해서 완벽한 부부가 될 수는 없었다"면서 "길 선생은 365일 술을 마시며 도박까지 했다"라고 밝혔다. 음악적 파트너로서는 견딜 수 있어도, 부인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패티김은 1972년 이혼한 뒤에 현재의 남편과 1976년에 재혼했다. 패티 김은 1994년 암 투병 중이던 길옥윤을 위한 콘서트 무대에 서기도 했다. 결국 길옥윤은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사랑은 떠나갔지만 그래도 음악은 남았다. oks3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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