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모두를 평범하게 만드는 기술, 전문성이 사라지고 있다”

2024-12-21

AI가 등장한 이후 인간의 일자리 소멸로 인해 현재의 경제 시스템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는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지난 7월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6년 안에 현재 일자리 90%가 AI나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지금까지는 기술이 단순 반복 작업을 대체할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생성형 AI가 등장한 이후에는 창의적, 예술적 작업까지 위협받고 있다. 최근 오픈AI는 동영상을 스스로 생성하는 AI 모델 ‘소라’를 발표하기도 했다.

헐리웃에서 컨셉 아티스트로 일을 하고 있는 추유진(상단 사진 중앙) 씨는 AI로 인해 심각한 직업적 위기에 있다고 전했다. 헐리웃 영화계에서는 베테랑조차 일거리를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주니어 아티스트는 거의 일거리가 없다고 한다.

지난 11일 <컴업 2024> 대담을 위해 방한한 그에게 별도의 인터뷰를 청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과연 실제로 AI로 인해 일자리가 줄었는지, 우리는 이런 기술의 발전에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는 <토르: 러브앤썬더>와 <더마블스> 등에 참여한 베테랑이다.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잠깐 부탁합니다.

네, 저는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사업 쪽에서 컨셉 아티스트로 일을 하고 있는 추유진이라고 합니다.

컨셉 아티스트? 저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직종인데,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만약에 마블 영화라고 치면, 거기에 세계관이 있을 거 아니에요? 글로 정리된 세계관을 비주얼로 디자인을 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영화 스크립트가 있으면 그걸 보면서 어떤 장면을 그리거나, 건축물 같은 것을 디자인을 한다거나, 캐릭터 디자인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직업입니다.

해리포터 소설을 보면서 캐릭터의 모습을 막연하게 상상했었는데, 그걸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이미지로 만드는 일 같은 걸 하시는 거군요.

네, 해리포터 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복식은 어떤 모습일지, 그리핀도르는 어떤 옷을 입는지, 그런 걸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떻게 현재의 일을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요, 한국에 있는 게임 회사를 다니다가, 12년 전에 미국으로 넘어와서 영화나 게임 쪽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작업한 대표적인 작품은 뭐가 있을까요?

대표적인 건 <토르 : 러브 앤 썬더>와 <더마블스> <미스 마블> 등 대부분 마블 시리즈입니다. 그 외에는 크게 유명하지는 않은 작품들인데 HBO 영화 <문샷>도 있고, 최근에 나온 건 애플 TV 쇼에 <레이디 인더 레이크> 등이 있습니다.

특정 회사나 단체에 소속이 되어서 일을 하는 건가요? 아니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건가요?

영화 산업은 다 프래랜서이고요, ‘아트 디렉터스 길드(Art Drectors Guild)’라고 비주얼 관련된 아티스트 조합이 있어요. 거기에 소속이 되어 있어야 할리우드에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요.

이번에 컴업 2024에서 대담자로 참여하셨는데, 대담 내용을 잠깐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AI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을 하다 보니, 이와 관련 창작자를 좀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저작권 관련해서 법안이 좀 개정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컨셉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다른 창작자, 화이트 컬러 노동자가 모두 타격을 받을 수 있잖아요. 기자님도 그렇고요.

예를 들어 저작권에서 옵트인으로 해서 AI 학습에 사용될 때마다 보상을 준다든가 하는 아이디어들이 제안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만 하면 산업 경쟁에 뒤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뭔가 국제적인 협약이 필요하지 않나, 이런 전반적인 얘기를 했습니다.

미국에서 창작자들은 관련된 단체 행동이나 이런 걸 하고 있나요?

제가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게 아마도 그런 움직임의 일부라고 볼 있고요, 제 주변 지인분들은 미국에서 많이 그런 행동들을 하고 있어요. 제가 소속된 조합 차원에서도 움직임이 있습니다. 길드에 ‘AI 태스크포스’도 있거든요.

창작 활동을 하실 때 AI 기술을 활용하기도 하나요?

저희는, 미국에서는 현재 조금 거부하는 입장이 상당히 큽니다. 디자인이든, 글을 쓰든, AI를 사용하는 거에 대해 거부감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테스트는 많이 해봤어요.

테스트해봤을 때 결과물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이 드시나요?

이미지 생성이라든지 이런 거는 정말 위협적이죠. 컨셉 아티스트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저희 직업 자체가 대체되기 쉬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는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직업인데 AI가 너무 잘해주다 보니까.

아까 예를 들었던 해리포터 소설을 텍스트로 놓고 이미지를 그려줘 하면 그런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보시나요?

네, 잘 나오게 될 거 같아요.

AI 결과물을 그대로 쓰진 않더라도 아이디어, 힌트를 얻는 용도로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그래서 이게 되게 빠른 핀터레스트다, 약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핀터레스트는 제가 자료를 계속 찾아야 되잖아요. AI는 내가 적으면 바로 좋은 이미지들을 콜라주 해서 만들어주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되게 큰 레퍼런스 창고다, 약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용도로 사용을 하면 AI가 발전돼도 괜찮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지금 베테랑 아티스트, 엄청나게 뛰어난 아티스트들도 힘든 상태예요. 이런 분들이 어렵다는 건 주니어 급은 거의 이 산업에 들어올 수가 없다는 의미거든요. 저도 느껴요. 시대의 끝(End of Era)에 있는 겉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도 직업을 어떻게 다른 형태로 변화시켜야 될지, 지금 모색을 하고 있는 중이고요.

직업적인 위기의식이 있다고 말씀을 주셨는데, AI라는 신기술이 사람을 대체해서 그런 위기가 온 건지, 아니면 산업 자체의 구조가 변해서, 예를 들어 헐리우드 영화계의 침체로 인한 문제인지…

저는 두 개가 결합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대가 확확 바뀌니까 투자자 분들도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데보다는 AI 툴에 투자하는 게 낫겠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저의 뇌피셜(주관적 판단)입니다. 하나의 이유라기 보다는 두 개가 병행해서 같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입니다.

현장에서 AI가 사람을 줄이고 있다, 이런 게 피부로 딱 느껴지시나요?

네 여기서는 확실히 느껴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10명이 필요했던 일이 이제는 한 명만 필요해요. 챗GPT 써보셔서 아시겠지만, 수정은 베테랑이 더 잘하잖아요.

AI는 평균적인 결과물을 내주죠. ‘이거 수정이 좀 많이 필요하겠는 걸’이라는 생각을 베테랑 아티스트는 쉽게 할 수 있지만 주니어 급에서는 그게 잘 생각이 안 날 수 있어요. 그래서 주니어 급에서 좀 고용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 같고, 그래서 여기서는 시니어 급에 대한 수요가 조금 더 있는 것 같아요.

옛날에 러다이어트 운동이나 이런 게 있었잖아요. AI를 거부하는 거에 대해 그런 움직임과 비교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러다이트…겠죠. 근데 극단으로 싸우자는 건 아니고 같이 가면 좋은 거잖아요. 기술의 발전으로 좋은 작업물을 싼 값에 만들 수는 있어요. 일반인들도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그걸 만들어낼 수 있죠.

그런데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게 문제거든요.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멋진 생각은 AI로 나올 수가 없어요. SM엔터테인먼트 김종민 이사 님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픽 카드 한 장 만드는 거보다, 아티스트 한 명 더 추가되는 게 낫다. 그렇게 되면 좋은 공생 관계가 되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공감 되고,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인터뷰 후에 추유진 아티스트는 SM엔터테인먼트 김종민 이사의 글을 참조해 달라고 보내왔습니다. 그 글 전문은 기사 하단에 첨부합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직업이 기술로 대체돼 왔고,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어요. 그래도 세상은 발전해 왔죠. AI도 마찬가지 기술 중 하나일 수 있지 않을까요?

1970년대 엄청난 블루컬러 붕괴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 과정에 노동자들이 거의 로봇으로 대체가 되던 시기가 있었대요.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많지 않았죠. 보호 정책도 별로 없었고요.

그러다가 이제 화이트 컬러한테까지 온 거죠. 변호사, 의사, 약사, 기자, 컨셉 아티스트, 작가, 감독 다 온 거잖아요. 그러다보니 정말 대규모 붕괴(Mass Disruption)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금의 직업만 없애는 게 아니라 갑자기 한 번에 확 없애는 거죠.

이게 확 없어지는 거니까, 정부에서 좀 속도를 늦추면서 직업을 잃어가는 사람들한테 재교육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AI 이전에도 창작의 영역에서 기술의 발전, 생산성의 발전은 계속 있었지 않았나요? 디자인 관련 툴의 발전도 있었고, CG 같은 기술도 발전했고요. 그 과정에서도 일자리 축소가 있었을거 같은데요.

좋은 말씀이에요. 그런데 그런 혁신이 일어난 이후 새로운 직업들이 더 많이 창출이 됐거든요. 그런데 지금 AI는 혁신이 일어났는데 사람을 더 줄이는 혁신이에요. 새로운 직업이 창출돼도 AI가 대체할 수 있어요.

제가 이 사업에서 경력이 14년 정도 되거든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혁신이 일어났어요. 언리얼 엔진이 새로 나오거나, 블랜더가 나왔을 때 혁신이었죠. 저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걸 좋아하고 항상 써보는 편인데요, 이런 기술 배우는 게 어려워요. 어렵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더 유니크해지는 장점이 있었어요. 그런데 AI는 유니크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모두를 평범하게 만드는 기술에요. 모든 전문성을 다 없애버려요. 이전의 혁신은 전문성을 높이는 혁신이었다면, AI 혁신은 전문성이 사라지는 혁신이에요.

네, 어떤 말씀인지 알겠어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추유진 아티스트가 보내온 김종민 이사의 글 전문입니다.

“One More Graphic Card, One More Artist: AI 시대의 균형잡힌 발전을 위하여”

우리는 지금 AI와 인간 협업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AI가 가져올 혁신적인 생산성과 효율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 창의성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있습니다.

AI는 인류가 축적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놀라운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물들은 필연적으로 ‘상향된 평균’을 지향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진정으로 매력적인 콘텐츠는 단순히 평균적인 것을 넘어, 예상치 못한 관점에서 보편적 가치를 발견할 때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창의적 도약은 인간 아티스트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One More Graphic Card, One More Artist”라는 제안이 의미를 가집니다. AI의 연산 능력을 높이기 위해 그래픽카드를 증설하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관점과 상상력을 제시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단순한 균형의 문제를 넘어, AI가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는 필수적인 투자입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그래픽카드 한 장을 생산하는 것보다 한 명의 아티스트를 육성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과 인내, 그리고 사회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투자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AI 시대에 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하고, 진정한 의미의 인간-AI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기술의 발전과 인간 창의성의 진보가 함께 나아가야 할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One More Graphic Card, One More Artist”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닌, AI 시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약속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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