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50주년 “담론 생성의 교두보 역할 계속할 것”

2025-12-10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 문학의 저력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영광의 순간은 단번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없다. 오랫동안 문학의 터전을 지켜온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문지)도 그중 하나다. 한국 사회의 비판적 성찰과 문학적 혁신을 도모하던 출판사는 올해 창사 50주년을 맞았다. 과거의 영광을 돌아보되 미래를 향한 변화도 고민해야 할 때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문지빌딩 사옥에서 문지 이광호 대표와 이근혜 주간을 만났다. 50주년을 맞아 문학 출판사 그리고 비평적 역할을 수행하는 문예지의 역할에 대해 얘기 나눴다. 이 대표는 1999년 문지의 계간 문예지 <문학과 사회> 동인으로 참여한 뒤 2017년 대표에 취임했다. 이 주간은 2000년 편집자로 문지에 입사해 한강의 주요 저작을 작업하는 등 한국 문학의 주요 사건들과 함께 편집자로 성장했다. 두 사람 모두 약 25년, 문지 역사의 절반을 함께 해온 이들이다.

문지는 1970년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 네 명이 모여서 만든 계간지인 <문학과 지성>을 기반으로 1975년 출판사 영업을 시작했다. 군부 정권 시절을 거치며 창작과비평사(현 창비)와 함께 한국 문학의 양대 산맥이자 비판적 지성인 시각을 전달하던 창구로서 역할했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된 사회에서 새로운 물결을 맞이한다.

가장 큰 변화라면 2015년 이후의 페미니즘 대중화 물결, 즉 페미니즘 리부트다. 이 대표는 “기존의 한국 문학 안에서 주체는 남성 이성애자라는 선입관이 작동하고 있었는데,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반성적 성찰이 이뤄졌다”며 “한국 문학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젊은 여성들 위주로 재편됐다. 젊은 여성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졌고 비평이나 편집을 하는 입장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주간도 “‘문학과 사회’를 편집하면서도 ‘하이픈’에 젠더적 관점에 대해서 다각적인 시각을 포섭하려고 노력했다”며 “하이픈에서 가장 많이 다룬 주제가 젠더”라고 말했다.

2016년부터 <문학과 사회>와 함께 발행하는 하이픈은 하나의 주제만 다루는 별책이다. 올해 초엔 12.3 불법 계엄 사태를 지나온 작가들의 이야기를 실은 ‘탄핵 일지’로 주목받았다. 이 대표는 “문단의 문제의식이 변하면서 이를 공론화하는 장이 필요했다. 잡지의 본권 안에서 서너 개 회차로 다루는 것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됐기 때문에 문학과 사회의 혁신호로서 지난 10년 동안 하이픈을 발행해 왔다”며 “문화 권력론 등 젠더 이슈를 포함해 새롭게 생성된 담론을 별책에서 해소했다”고 말했다.

순문학 중심 출판사인 문지에서 2023년부터 내고 있는 SF 앤솔러지 시리즈 ‘SF보다’도 눈에 띄는 시도다. 이 대표는 “문지가 전통적으로 장르물에 보수적이다. 지금도 그런 측면이 있다. 다만, SF는 최근에 독자들과 작가들이 두터워진 측면이 있고, 포스트휴머니즘이라든가 환경 문제 등 사회적인 담론을 담아낼 수 있다”며 “문지가 기존에 복거일이나 듀나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출간한 전통도 있기 때문에 SF의 약진을 담아내는 틀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시리즈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변화가 있지만 전통은 여전하다. 뜻 맞는 이들이 동인이 돼 출판사를 이끌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다음 세대 동인으로 권한을 넘기는 편집 동인제는 지금도 유지된다. 이 대표는 “출판 자본이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편집 ‘위원’이라면 동인은 임명이 아닌 자발성에 기초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문학과 사회>의 전신으로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폐간된 <문학과 지성>에서부터 이어온 사회에 대한 지적 성찰과 비판 역할 역시 문지가 놓지 않는 가치다. 이 대표는 “제호가 ‘문학과 사회’인 것처럼 사회에 관심을 안 가질 수는 없다. 하이픈에서 가장 호응이 좋았던 것도 올해 ‘탄핵 일지’였다. 사람들이 문예지에 가진 기대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장면이 아니었나 한다”고 말했다. 이 주간도 “계간이라는 지면 안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뽑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담론 생성의 교두보로서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방법은 독자와 함께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지는 이달 50주년 기념의 의미를 담아 ‘동시대 문학사’ 시리즈를 낼 예정이다. 나·젠더·사랑·폭력 등 주요 키워드 중심으로 1910년부터 2020년대까지 100년이 넘는 한국의 근현대문학사를 돌아본다. 오는 12일에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50주년 기념식을 연다. 1세대 편집 동인부터 젊은 작가들까지 문지의 역사를 함께해 온 이들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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