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학생들을 살펴보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흔히 ‘화난다’, ‘슬프다’ 같은 단어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이는 어휘 수준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저학년 학생들에게서 특히 자주 나타난다. 실제로 언어 능력이 아직 형성되는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게 구분하고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경험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문제는 저학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은 물론, 중고등학생들 중에서도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억눌린 감정이 쌓이면, 그것이 충동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감정 언어를 충분히 배우지 못한 탓에 마음속 복잡한 정서를 말로 풀지 못하고 결국 행동으로 표출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살면서 기쁨, 분노, 두려움, 슬픔 등 수많은 감정을 느낀다. 감정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이며, 인간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감정이 있기에 우리는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인생은 더욱 깊고 풍요로워진다.
사람들은 여행을 앞두고 설렘과 행복을 느낀다. 여행지의 풍경이 평소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낯설고 새로운 경험에서 오는 감정 때문에, 사람들은 기꺼이 시간과 돈을 들여 여행을 떠난다. 또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기에 인간은 더 깊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이렇듯 감정은 인간 삶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아이들이 이런 다양한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능 등 입시 위주의 학교 수업에서 감정 어휘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기는 어려워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 감정을 지닌 존재인 인간이 정작 그 감정을 표현할 언어는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감정 어휘를 배우는 일은 학생들에게 꼭 필요하다. 단순히 어휘력을 키우는 것을 넘어 아이들이 자기감정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관계를 맺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정 언어가 풍부해질수록 아이들은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타인에게도 깊이 공감할 힘을 갖추게 된다.
무엇보다 감정 어휘 학습은 정서 조절 능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이가 숙제를 하다 연필심이 부러졌을 때, 단순히 “짜증 나”라고만 말하면 교사나 부모는 그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억울해”라고 표현하면 상황에 대한 이해가 더 정밀해지고,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분류하고 정리할 수 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정서 지능(EQ)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배운 아이일수록 충동을 조절하고,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감정 어휘는 공감 능력의 기초가 된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친구가 화가 난 모습을 봤을 때, 단순히 ‘화났구나’라고만 받아들이는 것과 ‘당황했겠구나’, ‘서운했겠구나’처럼 감정을 더 세밀하게 이해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감정을 섬세하게 구분하고 표현하는 경험은 친구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고, 갈등을 해결하며, 협업 능력을 기르는 등 학교생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줄 아는 아이는 배려심과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키우며, 공동체 속에서 더욱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감정 어휘는 언어 발달은 물론, 문학적 표현 능력을 키우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글쓰기나 시 쓰기에서 감정 표현은 핵심적인 요소다. 예를 들어 ‘슬프다’ 대신 ‘쓸쓸하다’, ‘허무하다’와 같은 더 섬세한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글의 분위기와 메시지는 한층 더 풍부해질 수 있다.
감정 어휘의 중요성은 독서 감상에서도 드러난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이해할 수 있을 때 학생들은 작품을 깊이 있게 읽고, 자기 언어로 재구성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이처럼 감정 어휘는 단순한 표현력 향상을 넘어 사고와 감정의 깊이를 확장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다.
감정 어휘의 부족은 정신 건강 문제나 학교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속상함이나 억울함을 말 대신 행동으로 표출하는 일이 많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많은 갈등은 사소한 감정의 오해에서 비롯된다.
반면 감정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학생은 분노를 조절하고, 갈등을 대화로 해결하는 데 능숙하다. 감정 어휘를 풍부하게 익히는 것은 학교 폭력을 예방하고,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을 이끄는 중요한 기초가 될 수 있다.
결국 감정 어휘를 익히는 일은 단순히 표현 몇 가지를 더 배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아이일수록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타인과의 관계도 더욱 원만해진다. 더 나아가 글쓰기와 문학 교육은 물론 학교 공동체 전체의 문화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그러나 감정 어휘 교육은 아직도 학교 교육의 중심에서 소외되어 있다. 교과 중심, 성적 중심의 수업 속에서 감정을 표현할 기회는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만다. 이제는 부모와 교사 모두 감정 어휘 교육의 가치를 인식하고, 일상 속 대화와 수업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방승범 교사 프로필>
- 서울경인초등학교 교사
- 서울교대 학사 및 동 대학원 졸업
- 디지털 교과서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