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2025-09-15

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젊은 시절 ‘이 시대에 진정한 어른은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지며 갑론을박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가 찾고 있는 어른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목마르게 찾았을까. 아마도 각자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살아온 길을 보며 저절로 고개 숙여지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책임질 줄 아는 사람 등등 각자의 마음에 그리는 어른의 상이 있었겠지.

어른은 삶의 고비마다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각자 가고자 하는 길에 롤 모델이 돼 줄 어른을 찾았던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세월이 너무 많이 변해버린 지금, 젊은이들이 찾는 어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오늘날 지식은 대부분 인공지능(AI)에서 얻기에 더 이상 사람들에게 묻지 않는다.

할머니들이 하나같이 손주들 돌봐주면서 딸이나 며느리에게 들었던 말들이 있다. 옛날 아이 키울 때랑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에서 열까지 며느리나 딸이 알려준 방식대로 해야 무탈하다고 할머니들은 입을 모은다. 아이 키우면서 어머니에게 물었던 시대가 아닌 AI가 알려준 방식이 최고인 세상이다.

그리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에 대해 박수를 보냈던 이야기는 먼 옛이야기처럼 들린다.

책임지는, 특히 지도층에서는 더 찾기 힘들다 보니 어떻게 하면 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가 더 관심사가 된 세상이 참 씁쓸하다.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참 그리운 세상이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지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어른 대접을 받고자 하면 받아들여질 수 없는 세상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이 들수록 세상을 살아가는 지식과는 점점 더 멀어져 오히려 젊은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대다.

식당만 가도 테이블에 태블릿 오더로 주문하고 결제까지 하니 서툴러 시간을 지체한다. 경험에서 얻어진 지식으로 도움을 줬던 세대가 이제는 도움을 받는 세대가 됐다.

어른에 대한 갈망이 70줄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도 남아 있다. 남은 세월 그래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욕심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붙잡고 있다.

자료 수집을 위해 만났던 할머니들,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살아온 세월을 엿보았던 분들에게서 인내의 세월을 봤고, 언제든지 안기면 무장해제 될 것 같은 푸근함과 넉넉함을 봤다. 그리고 아무 무기도 없이 온몸으로 책임을 다하려고 버둥거리면서 살아낸 삶이 내 마음에 어른의 자리에 하나씩 짜깁기됐다.

나도 누군가 마음 한 자락에 짜깁기할 한 조각을 줄 수 있다면 그래도 내 몫의 삶은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늘도 내 삶의 자리에 주어진 책임을 다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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