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미국 보수 청년운동가 찰리 커크 추모 열기를 취재하기 위해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터닝포인트USA 본사 앞을 찾았다. 미국 전역에서 온 사람들이 놓고 간 꽃과 편지 더미가 수십m는 돼 보였다. 침울한 표정으로 커크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앳된 청년에게 다가가 ‘커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냐’고 물었을 때였다. 옆에 서 있던 그의 아버지가 갑자기 끼어들며 공격적으로 말했다. “커크를 좀 이상하게 발음하는 것 같은데. 다시 한번 해봐요.”
그가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한 말이 아니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청년이 아버지를 밀어내고 대답을 이어가 인터뷰는 잘 끝낼 수 있었지만 졸지에 커크 이름으로 ‘R’ 발음 테스트를 당할 뻔하고 나니 당혹감과 의아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불과 약 2주 전 미 이민당국의 한국 배터리 공장 급습을 취재하기 위해 찾았던 조지아주 엘러벨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순간이 있었다. 주유소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민당국의 급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외국인 노동자와 공장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며 이렇게 말했다. “그 공장 사람들은 영어도 못해요. 도로표지판을 못 읽어서 운전도 난폭하게 한다고요!”
난폭운전에 대한 불만은 그럴 수 있다 해도, 그것이 영어 실력과 얼마나 큰 인과관계를 가진다는 것인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도로표지판을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영어 잘하는 미국인도 난폭운전을 하지 않나. 한국에도 난폭운전을 하는 한국인이 있는 것처럼.
도대체 이들에게 ‘영어’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비영어권 국가 정상을 만나면 상대방의 영어 실력 평가하기를 즐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서명한 행정명령도 영어를 미국의 ‘공식 언어’로 선포한 것이었다. 그러나 원래부터 영어는 미국의 공식 언어였다. 단지 선포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실질적인 조치라기보다 상징적인 행위에 가까웠다. 미국의 정체성을 ‘언어’ 그리고 그와 깊숙이 연동되는 ‘인종’을 기준으로 재조립하겠다는 선언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식 언어 선포와 동시에 이민자 영어교육 프로그램(ESL) 예산 전액 삭감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식 영어를 모국어로 습득한 사람들만 ‘우리’ 안에 끼워주겠다는 ‘언어적 쇼비니즘’이다.
“나는 유창하게 모국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구역질이 났다. 그 사람들은 말이란 그렇게 착착 준비되어 있다가 척척 잽싸게 나오는 것이고, 그 외의 다른 것은 생각하거나 느낄 수 없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일본 작가 다와다 요코가 쓴 이 구절에 대해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자기가 편협한지 모르는 편협함에 대한 구역질’이라 해석한 바 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는 한국에선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언어의 이주민’으로 살아보니, 이젠 유창한 영어뿐 아니라 ‘유창한 한국어에 대한 구역질’도 조금 알 것 같다. 조선족·탈북민의 억양이나 동남아 이주노동자의 다소 어눌한 한국말에 대해 자신이 가진 편견이 편견인지 모르는 편협함도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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