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백악관 최후의 날’(2013)은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가 백악관에 잠입해 미국 대통령을 인질로 붙잡으며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극중 ‘강연삭’이란 이름을 지닌 악질 테러리스트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 릭 윤(52)이 연기했다.
영화는 한국 국무총리가 백악관을 방문해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강연삭이 한국 측 경호원으로 위장하는 바람에 백악관이 그만 쉽게 뚫리고 말았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들은 영화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한국 총리가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고?’ 대통령제 국가인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을 의원내각제 국가로 오인한 제작진이 내각제 국가의 수반인 총리를 출현시킨 것 아닌가 싶다.

2021년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어느 자리에서 유럽 정상들과의 대화 내용을 소개하던 중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바이든은 “영국 존슨 총리, 독일 메르켈 총리, 프랑스 마크롱 총리… 아 참, 마크롱 대통령이죠”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대통령제 국가로 그 정상인 에마뉘엘 마크롱은 엄연히 대통령인데, 총리로 착각한 것이다.
반대로 총리를 대통령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제회의 석상에서 내각제 국가인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를 ‘카니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이에 카니 총리는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승진을 시켜줘 기쁘다”는 말로 재치있게 응수했다. 총리나 대통령이나 국가 정상인 점은 같으나 의전 서열은 대통령이 총리보다 앞선다는 점에 착안한 농담이었다.
정치에 약간의 식견만 있는 사람도 선진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이 대통령제가 아닌 내각제 정부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안다. 일례로 ‘선진국 클럽’이라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광경을 떠올려보자.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는 미국·프랑스 단 둘뿐이다. 나머지 영국·독일·일본·캐나다·이탈리아 5개국은 총리가 국가 정상 역할을 한다. 선진국이 몰려 있는 유럽을 보면 북유럽의 스웨덴부터 남유럽의 스페인까지 거의 다 내각제를 채택한 나라들이다. 그러니 서방 국가 정상을 대할 때 ‘대통령’보다는 ‘총리’라고 호칭할 일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반면 트럼프처럼 자기 중심적이고 또 미국을 최우선시하는 지도자 입장에선 익숙한 ‘대통령’과 달리 ‘총리’는 낯설고 생소한 용어일 수 있겠다.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이틀 일정으로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앞두고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속속 입국할 예정이다. 브루나이 왕국처럼 국왕이 자국을 대표해 참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 정상의 신분은 대통령 아니면 총리다. 대통령제 국가는 대통령, 내각제 국가는 총리가 각각 정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워낙 많은 나라가 등장하다 보니 언론도 헷갈리는 모양이다. 어느 신문이 지난 25일자 지면에 ‘멕시코 총리’라는 표현을 쓴 것이 대표적이다. 멕시코는 대통령제 국가로 경주 에이펙에 오는 정상은 멕시코 역사상 첫 여성 국가원수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다.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 입장에선 ‘총리’라고 불리면 서운하고 섭섭한 기분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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