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다가 협심증 왔다. "
지난 주말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를 러닝타임 내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다 본 후에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위 표현을 발견하곤 혼자 피식 웃었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
다큐멘터리적 위기 상황 재연과 이를 맞닥뜨린 인물들의 심리 묘사로 스릴러를 뛰어넘는 긴장감을 유발하는 캐스린 비글로 감독 작품답게 2시간 내내 그 흔한 총성 한 발 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이 "너무 생생해서 무섭다"라거나 "공포 영화보다 더 겁난다"는 제목을 뽑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당장에라도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위기 상황을 너무 리얼하게 담고 있어서다. 특히 핵과 관련해 평양이 자주 언급되기에 한국 시청자라면 더 몰입할 수밖에 없다.
핵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낙관적 기대가 불러올 재앙 다뤄
사소한 실수·오판에 취약 불안감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영화는 네브래스카 전략사령부가 태평양 어디선가 발사된 미확인 탄도 미사일을 인지한 시점부터 핵탄두가 미국 본토, 정확히는 시카고를 타격하기까지 남은 시간 18분을 각각 다른 앵글로 세 번 반복하며 보여준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이날 첫 공식 일정으로 여자 어린이 농구 교실 코트에서 평화롭게 슛을 날리던 미국 대통령은 갑자기 전 인류의 운명을 바꿀 위험한 선택을 해야 한다. 미국 3대 도시 권역인 시카고가 불타며 1000만 사상자 내는 걸 보면서도 적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해 외교적 신뢰를 바탕으로 대응을 자제할지, 아니면 전 세계적 핵전쟁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보복 공격을 감행해야 할지를 식당 메뉴판 같은 매뉴얼을 보며 온전히 혼자 결정해야 한다.
더 기막힌 건, 미사일을 쏜 상대가 본인들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러시아인지, 핫라인 연결조차 안 되는 와중에 DMZ 인근에서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북한인지, 공격 의사 없이 그저 AI 미사일 발사 시스템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는 중국인지,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소한 도발(실수)로도 얼마든지 지구를 파멸시킬 수 있는 오판 가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섬뜩하다.

이런 현실과 똑 닮은 상황보다 더 오싹했던 건 역설적으로 극 중 그 누구도 무능하거나 무책임하지도, 그렇다고 우왕좌왕하지도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긴급 경보가 울린 지 3분 만에 백악관 상황실은 관련 고위직 화상회의를 소집하고, 데프콘 4(평시 전투준비태세)가 시시각각 데프콘 2(초비상)에서 데프콘 1(전시)로 넘어갈 때마다 이미 수천 번 훈련해온 프로토콜대로 모든 관계자가 빈틈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재앙을 막을 순 없다. 이런 미친 현실이 닥치기 불과 5분 전만 해도 적의 미사일을 100% 격추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500억 달러짜리 요격 시스템은 일고 보니 고작 '총알로 총알 맞히기' 같은 확률로 작동하고 있었다. 또 북한엔 탄도 미사일이 없을 거라던 확신은 북한이 최근 잠수함 기술력에 공들이는 걸 보고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판단했을 뿐이었다. 별다른 선택지 없이 다가오는 재앙 앞에서 너무 늦게 이런 사실을 깨달은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은 망연자실해 한다.
영화 보는 내내 어쩔 수 없이 자꾸 "한국이라면"이라는 불온한 상상을 했다. 만약 불과 10여분 뒤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에 정체불명의핵탄두가 떨어지는 위기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이재명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까. 프로토콜에 따라 수없이 훈련하는 미국도 막기 어렵다면, 우리는 더 취약하지 않을까. 게다가 18분은커녕 얼마든지 충분한 숙의 시간이 있었던 부동산 정책조차 대체 컨트롤타워가 어딘지 불분명하게 보일 만큼 우왕좌왕하는 정도 역량밖에 안 되는 정부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마침 오늘(29일) 부산에 오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꾸 "북한은 핵 보유 세력"이라며 김정은과의 만남에 목매는 걸 보고 있자니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흐려지는 느낌에 불안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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