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자본이 가진 태생적 조급함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점들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책과 이론으로 그 문제들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일은 '강 건너 불 구경'과 유사하다.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 즉 창업가들은 손바닥에 놓인 작은 알 하나를 보고도 가슴이 뛴다. 그들은 알껍데기 너머, 훗날 화려한 깃털을 뽐내며 창공을 비행할 새를 상상한다. 반면 금융투자자들의 시선은 다르다. 그들은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 알이 부화할 확률은 몇 퍼센트인지, 아니면 차라리 지금 이 알을 팔아 당장 얼마를 남길 수 있을지에 골몰한다.
이처럼 창업가와 투자자는 DNA부터 다르다. 실리콘밸리에는 창업가 출신 투자자가 많아 그 간극이 좁다지만, 한국에서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방인처럼 창업가와 투자자 간 '랭귀지'와 '케미'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필자는 운 좋게도, 혹은 운 나쁘게도 이 두 입장에 모두 서 봤다. 2000년대 초 증권사를 나와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로 나섰다. 결과는 참담했다. 투자한 회사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고, 결국 내 회사도 폐업했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당시의 나는 무늬만 창업 지원가였을 뿐, 속내는 철저한 '금융투자자'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시 필자의 시선으로는 투자했던 회사 창업가들의 비전은 무모해 보였고, 당장의 수익이 없는 사업 계획은 허황돼 보였다. 그러니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반대로 지금의 회사를 창업하고 나서는 투자를 받는 입장이 됐다. 다행히 지금 우리 회사를 투자한 주주는 금융업자가 아닌 앙트레프레너형 투자자였다. 그들은 내가 손바닥 위에서 상상하는 미래를 함께 보아주었다. 투자 후 7년여가 지났지만, 그들은 재촉 대신 침묵과 신뢰로 기다려준다. 한국 자본 시장에서 이런 '인내하는 자본'을 만난 건 기적에 가깝다. 우리 회사가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신뢰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창업가는 '잘못된 만남'에 신음한다. 최근 화제가 된 책 <실패를 통과하는 일>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VC 투자에 따르는 '성장 그래프' 압박이 너무 커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어느 순간 '나는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이른바 '시리즈B' 투자의 함정이다. 꿈을 팔던 단계에서 숫자를 증명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 펀드 만기와 수익률에 쫓기는 VC들은 창업가에게 가파른 'J커브' 성장을 강요한다. 이때부터 투자는 '성장통'이 아니라 '성장독(毒)'이 된다. 업의 본질은 숫자에 짓눌리고, 창업 초기의 야성은 거세된다. 자본이 들어와 기업을 살찌우는 게 아니라, 기업 고유의 색깔을 지워버리는 역설인 것이다.
이 비극은 비단 스타트업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최근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거세지는 행동주의 펀드의 투자속성 역시 본질은 같다. 10년 후의 미래 먹거리보다는 당장의 배당을, 불투명한 R&D 투자보다는 자사주 매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금융의 논리'가 '산업의 소신'을 압도하는 순간, 경영의 시계(視界)는 걷잡을 수 없이 단기화될 것이다. 오늘 황금알을 꺼내기 위해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이 '주주 가치 제고'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것이다.
금융자본은 본능적으로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경이로움을 지켜보기보다, 껍질을 깨서 당장의 결과물을 확인하려 든다. 하지만 위대한 혁신은 '재촉'이 아니라 '인내'라는 토양 위에서만 자라난다. 새가 날아오르기 위해선 어미 새의 따뜻한 품이 필요하듯, 기업의 성장에는 숫자 압박이 아닌 '비전 공유'가 더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주자본주의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우리가 키우고 싶은 것은 분기 실적에 일희일비하는 단기경영인가, 10년 후 산업을 재정의할 창발적 혁신 생태계인가.
알 속의 새에게 필요한 것은 차가운 계산기가 아니라, 창공을 함께 꿈꾸는 동반자다. 현재의 선택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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