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31조원의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복지예산 집행을 줄이고, 산재 노동자 지원을 위한 기금까지 끌어다 썼다. 17일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정부는 지난해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예산현액 7조5149억원 중 7조3605억원만 쓰고 1544억원은 집행하지 않았다. 기초생활보장 의료급여는 8조9377억원 중 8조4376억원만 쓰고 5001억원을 덜 집행했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는 소득이 중위소득 30% 이하인 저소득층이 지급 대상이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수급 대상 가구의 실제 소득 수준이 예산보다 높았기 때문에 가구당 받는 생계급여가 줄어든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생계·의료급여 미집행액이 연간 수천만원에 불과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많다. 윤석열 정부가 예산 절감을 위해 대상자 선정과 지급액 산정 등을 소극적으로 했을 가능성을 의심할 만하다.
불요불급한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수시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경제 침체에 소득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당초 잡아놓은 기초생활보장 예산까지 쓰지 않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부는 지난해 산재보험기금 등에서 1조6000억원을 빼내 세수 결손을 막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산재보험기금은 노동자의 산재 보상을 위해 써야 하고 재원도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에서 나온 것이다. 주택청약저축 가입자들이 낸 돈으로 조성한 주택도시기금에선 기존 발표액(2조~3조원)보다 많은 3조2000억원을 전용했다.
재정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소득 재분배다. 여유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부자들 세금을 깎아주면서 저소득층과 노동자 복지를 줄였으니 완전히 거꾸로다. 국가와 정부가 왜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올해도 세수 여건이 녹록지 않다. 가뜩이나 내수가 어려운 데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국제 통상 환경이 매우 불안정하다. 지난 2년처럼 올해도 기업이 내는 법인세 등이 예상보다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법인세와 소득세, 상속세, 부동산세 등 거의 모든 세목에서 감세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은 감세 아닌 증세를 해야 하고, 시급히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그것이 내수 회복을 통해 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