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율 관세를 앞세워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줄이겠다고 나섰지만, 실제 통계는 정반대 흐름이다. 관세 전쟁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누적 상품수지 적자가 여전히 확대되고 있다. 최근 월간 적자가 줄긴 했지만 내수 위축에 따른 ‘불황형’ 감소라는 평가가 나온다.
14일 미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1~9월 미국의 상품수지(상품 수출-수입) 누적 적자는 9787억 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8725억 달러보다 1062억 달러(약 156조원) 늘어난 규모다. 관세 부과가 예고되자 기업들의 사재기성 수입이 1~3월에 집중되면서, 연초부터 적자 폭이 급격히 불어났다.
이후 기업의 사재기가 진정되면서 8~9월 월간 적자 폭은 지난해에 비해 다소 줄었다. 특히 9월(528억 달러)에는 2020년 6월 이후 가장 작은 규모의 상품수지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관세 부담 속에 내수가 위축되며 수입 증가세가 둔화한 데 따른 결과로, 경기 둔화 국면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불황형’ 적자 축소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9월 수출은 3% 늘었지만, 수입은 0.6% 증가에 그쳤다.
국가별로 보면 관세 전쟁의 효과는 ‘적자 축소’보다는 ‘적자 상대국의 이동’에 가깝다. 한국과 일본, 중국과 유럽연합(EU)과의 무역적자는 줄어든 반면 멕시코와 동남아, 대만과의 적자는 확대됐다.
올 1~9월 누적 기준 미국의 대중(對中) 상품수지 적자는 1605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175억 달러보다 570억 달러 축소됐다. 미국과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지은 한국과 일본도 적자 폭이 줄었다. 미국의 대한국 상품수지 적자(한국 입장에서 흑자)는 444억 달러로 지난해(504억 달러)보다 감소했다. 일본 역시 498억 달러에서 484억 달러로 소폭 줄었다. 자동차·기계류 등 주력 품목에서 미국의 수입 증가세가 둔화하며 적자 확대를 막은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멕시코와의 상품수지 적자는 지난해 1~9월 1255억 달러에서 올해 같은 기간 1459억 달러로 확대됐다. 베트남도 906억 달러에서 1295억 달러로 늘었다. 태국 역시 329억 달러에서 487억 달러로 적자 폭이 커졌다. 중국을 직접 겨냥한 관세로 전 세계 공급망이 재편되며, 생산 거점과 수입 경로가 멕시코와 아세안 등으로 이동한 결과다. 한 통상 전문가는 “관세 전쟁이 미국의 수입선을 재배열하는 효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미국은 대만과의 교역에서도 적자 폭을 늘렸다. 올 1~9월 기준 미국의 대만 상대 상품수지 적자는 944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45억 달러에서 399억 달러로 확대했다. 올해 미국의 대대만 수출은 398억 달러에 그쳤지만, 대만발 수입은 1342억 달러로 크게 늘었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로 반도체와 정보기술(IT) 장비 수입이 급증한 영향이 컸다.
관세 부담은 상품수지를 넘어 미국 경제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지난주 미국의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3만6000건으로, 한 주 전보다 4만4000건 늘며 5년 9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실업수당 청구는 해고 동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용 관련 선행 지표로, 노동시장의 온도를 가늠하는 데 쓰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8일 미국 농가를 120억 달러(약 17조6300억원) 규모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 갈등에 따른 대두 수출 중단 등으로 타격을 입은 농가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취지로, 관세 정책에 따른 부작용을 재정으로 보전하는 조치다.
고물가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 지역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관세는 올해 여름 기준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를 연 0.5%포인트, 변동성이 큰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핵심 PCE 물가는 0.4%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Fed 내부 분석에서도 관세로 핵심 재화 가격이 약 0.3% 비싸졌고, 이 영향이 전체 물가 상승률을 0.1%포인트 추가로 밀어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관세로 인한 비용 압력이 중기적으로 성장률을 연평균 0.06%포인트 낮출 수 있다고 평가했다.
관세 정책으로 무역적자를 줄이지 못한 트럼프 행정부가 거둔 실질적인 성과는 관세 수입 증가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까지 관세 수입은 2362억 달러였다. 2023년 기준 미국의 관세 수입은 약 800억 달러 수준이었고, 지난해에는 970억 달러가량이었다.
다만 기업들의 ‘프런트 로딩’(재고 축적)이 마무리되면서 관세 수입 증가 속도는 둔화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관세 부과의 법적 근거가 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 해석을 둘러싼 연방대법원 판결도 변수다. 미국 NBC는 “9월 말까지 징수된 1740억 달러의 관세 수입 중 약 900억 달러가 IEEPA에 근거한 관세”라며 “판결에 따라 이들 관세의 상당 부분 또는 전부를 수입업자에게 환급해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세 수입이라는 ‘성과’마저 되돌려질 수 있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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