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농가는 생산에는 일류이지만 가격 형성에는 관여할 수 없습니다. 상행위가 이대로 지속되면 생산자 부담이 너무 커져 식량안보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이같은 흐름을 멈출 생각입니다.”
에토 다쿠 일본 농림수산상(장관)은 7일 기자회견에서 이날 국회에 제출된 ‘식품 등의 유통의 합리화 및 거래의 적정화에 관한 법률’과 ‘도매시장법’ 개정안에 대해 “유통업체의 부당한 우월적 지위 남용을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는 그것에 근거해 지도·권고할 수 있어 일정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는 앞서 일본이 공개한 ‘식량·농업·농촌 기본계획’에 담긴 ‘합리적인 가격 형성’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담겼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가격 협상에 성실하게 임하도록 ‘노력 의무’를 부과하고, 대응이 부적절한 사업자에게는 국가가 지도·권고 등을 시행하는 게 골자다. 또 가격 협상의 근거가 되는 ‘비용 지표’를 작성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일본에 있어 ‘큰 도전’인 이같은 시도는 지금대로 가면 자국의 식량안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시작됐다. 농림수산성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두부·낫토 등의 생산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했으나 유통업체들의 구매단가는 오히려 하락해 제조업체수가 감소하는 등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소매업체들의 과도한 이윤이 원인으로 지목돼 정부가 바로잡기에 나선 것이다.
일본 정부의 경제정책도 이같은 움직임이 일어나는 데 한몫했다. 지난해 1월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일본 노사정 대화에서 중소기업을 포함한 모든 공급체인에서 적정한 가격 ‘전가’를 일본의 새로운 상습관으로 정착시킨다는 내용의 시책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전년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 인상을 산업계에 당부했고, 동시에 이같은 상승분이 상품·서비스 가격에 전가돼 경제 활력을 촉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농림수산성의 조치는 사실상 이같은 경제정책 방향을 농업계로 확장시킨 것이다. 농림수산성이 물가상승 우려에도 불구하고 생산비를 농산물값에 전가시키려는 이유 또한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전제하고 있다. 농가들이 어렵기 때문에 적정 소득을 벌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마련돼 있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것이다.
농산물 제값 받기는 한국 농민들의 꿈이기도 하다. 앞서가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할 때다.
이민우 정경부 차장 minwoo@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