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검열의 시대

2025-07-01

우리에게 문화정치는 아직 친숙하지 않지만, 세계 여러 나라는 일찌감치 문화정치를 추진하고 실현해왔다. 그중에서도 프랑스는 문화정치로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다.

들여다보면 프랑스의 역대 국왕과 대통령들은 정치의 중요한 기반을 문화에 두었다. 프랑수아 1세는 문화정치로 문화 권력의 기초를 다졌고, 막강한 권력으로 절대왕정의 상징이 된 루이 14세도 궁정에 예술가들을 상주시키며 문화기구를 만들어 운영했다. 군인 출신 정치가였던 드골 대통령은 정부 기구로 처음 문화부처를 만들어 앙드레 말로를 초대 장관에 앉혔으며 미테랑 대통령은 아예 문화개발국을 창설하고 예술 창작진흥기금을 신설해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오늘날 프랑스가 문화 강성의 나라가 된 바탕에는 이러한 문화정치의 탄탄한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 문화정치는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문화정책 전문가인 파리 8대학 장 미셸 지앙 교수가 ‘문화정치는 프랑스의 발명품으로 미래의 세계, 모든 나라가 공유하는 공적 가치가 됐다’고 할만하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의 문화정치는 어디쯤 와있을까 궁금해진다. 아쉽게도 우리의 문화정치는 표류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불거져온 예술인 탄압과 검열의 흑역사가 그 증거다. 가장 가깝게는 지난 2016년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있다.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비문화적 작태다. 이름을 올린 문화예술계 인사는 자그마치 9,473명, 이들은 정부 지원사업에서 배제되거나 자유로워야 할 창작 활동에 제약을 받아야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한강,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도 블랙리스트 대상이었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논의와 제도적 개선 요구가 높아졌지만, 아직도 완전한 해결과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환경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난데없이 미술 평론 글 검열 사태가 불거졌다. 이번 검열 논란의 주체는 서울시립미술관이다. 아카이브 전시회 도록에 글을 실을 평론가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이 우리 사회와 문화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거론한 것을 문제 삼았다. 미술관은 ‘소통의 오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검열에 반대하는 예술인 연대’가 꾸려지고 이미 700여 명의 예술가가 연대하고 나섰다.

새로운 시대, 개혁과 혁신이 화두다. ‘예술이 바로 행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들의 역할을 지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문화정치’의 힘이 우리에게도 지금, 절실하다./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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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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