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문학] 불쾌 유발의 근거는 못난 자신과 그 틈을 파고드는 악한 자본주의, <마담 보바리>

2025-02-14

리플리 증후군과 비슷한 보바리즘(Bovarysme)의 원조는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 (1857)의 보바리다. 리플리 증후군이 거짓이 망상이 되고 그 망상을 현실로 믿는 ‘병’이라면 보바리즘은 과대망상을 현실로 믿는 ‘병’이다. 리플리가 현실을 부정하며 거짓말을 일삼았다면 보바리는 현실에 불만이 가득해서 ‘눈에 뵈는 게 없는 행동’을 일삼는다. 리플리는 화가 나다 못해 측은하기 짝이 없지만 보바리는 한심하고 불쾌하다.

그래도 보바리에게 변명거리는 있다. 보바리는 영화가 발명(1895, 뤼미에르 형제)되기 전인 19세기 초중반에 태어났고, 낭비벽에 집안을 말아먹는 부인을 사랑하면서도 시골 마을을 결코 벗어날 생각이 없는 의사 남편이 있었으며, 농부의 딸로 살아왔다 보니 정신세계는 자유롭기가 그지없는데 엄혹한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데다, 소설의 배경이 소수의 사람이 자본주의의 은혜를 받거나 다수의 사람이 노예가 되는 2차 산업 혁명 시기였다는 사실이다. (보바리는 노예가 됐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으로 풍기문란죄와 종교 모독죄로 기소됐다가 무죄를 받았다. 덕분에 그는 명성을 얻었고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 2008년 이명박 정권에서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가 알려졌을 때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불온서적 기획전’을 열어 일명 ‘대박’을 터트렸던 ‘사건’과 같은 방식이다. 노이즈 마케팅의 위력이다. 당시 불온서적 가운데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 장하준)이 있는데, 보바리에게 외상으로 고가의 물건을 주다가 저택 문서를 받아내고야 마는 편집숍 사장이자 고리대금업자이자 사채업자와 닮았다. 보바리는 나쁜 사마리아인에게 은혜를 받은 ‘정신이 가난한’ 자이다.

보바리는 1857년에 책으로 소개되었고, 영화로는 1949년(미국), 1991년(프랑스), 2014년(미국)에 각각 제작됐다. (미국에서 만든 보바리 영화는 모든 게 프랑스인데 언어만 영어다. 물론 불어가 나오긴 한다.) 현실에 대한 불만이 성적(性的) 탐닉으로 이어지는 한국 영화는 변영주 감독의 <밀애>(2002)도 있고, 그보다 훨씬 앞서 한형모의 <자유부인>(1956)도 있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 (1975)과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1976)은 전쟁이라는 위기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권력이나 부를 가진 자들이 변태적 성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국에 소개된 모든 보바리는 ‘불륜 섹스에 환장한 여자’로 묘사된다. 포장하고 포장해서 일단 아름답고, 자유라는 이름의 방종을 갈망하는 ‘자유부인’쯤으로만 다루고 있다. “날 어디론가 데려가 줘요”, “금지된 사랑의 시작”, “온통 당신 생각뿐이에요” 따위다. 19세기의 금기(禁忌) 정도를 21세기에도 그대로 갖다 쓰고 있다. 이제는 불륜에다 성 도착 또는 집착 같은 건 콘텐츠로 들어가면 플롯의 핵심 언저리 축에도 못 든다. 드라마 <이브> (2022, tvN)에서 불륜이란 “몸뚱이밖에 가진 것 없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 수단이고, 수많은 팜-파탈(Famme Fatale)에게 불륜이란 수요와 공급의 루틴을 몸뚱이로 치환해 버리는 수단이다.

<마담 보바리>에서 21세기의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달아오른 보바리를 ‘먹고 튀는’ 날라리 제비, 레옹 듀피스가 아니라 덤터기 씌워서 물건을 팔아치우는 사채업자이자 고리대금업자다. 자비로운 장부에 손쉽게 쓸 수 있는 이름만으로 물욕을 자극해서 나락으로 빠트린 뒤 모든 걸 앗아가 버리는 바로 그놈. 카드 한 장으로 백지수표인 양 마음껏 결제하게 하고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을 찍어버리게 하는 얇은 카드 속 그놈들. 내 피 한 방울은 아까워하면서도 남의 호주머니는 탈탈 털어버리는 몰염치한 인간들에게 당하고 또 당하는 보바리의 모습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배급사가 카피에서 성적 환상을 자극하겠다고 써 붙여 놓고 극장 안에서 배신을 주고 욕바가지 먹을 게 아니라 돈, 자본주의의 배신,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프레임으로 제시했더라면 관객 수는 7259명이 아니라 최소한 10배는 더 많이 봤을 것이다.

이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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