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자가 참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엉엉 소리 내며 운다. 이제 18세가 되어 부모의 품을 떠나 타 주 대학 캠퍼스로 이사 가는 날이다.
내 눈시울이 붉어지고 방울을 떨구었지만, 손가락은 올려져 있다. 엄지와 검지를 맞물려 동그라미를 그린다. ‘오케이’라는 손동작이다.
손자는 ‘오케이 보이’다. 할머니가 무슨 제안을 했을 때 그걸 받아들이며 동의한다. 도움을 청했을 때도 그는 늘 “오케이”하며 흔쾌히 대답한다. 행여나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면 고개까지 끄덕이며 크게 말한다. “오케이, 이해했어요.” 항상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일이 잘 풀렸을 때나, 무언가가 괜찮을 때, 어떤 일을 마무리하거나 대화를 끝낼 때 “오케이, 할머니 맞아요!”라고 맞장구친다.
그는 내가 손가락을 올려 동그라미를 그리는 이유를 알 터이다. 태어나 처음 가족과 헤어져 먼 곳으로 떠나는 마음이 얼마나 두렵겠는가. 그럼에도 애써 참으며 새 환경에 잘 적응하리라는 것을 우린 서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어려움을 겪어 내면서 당연한 일상의 행복이라고 만족하는 웃음을 띠며 엄지손가락을 말아 올릴 것이다.
엄지를 든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칭찬이나 인정하는 반응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말없이 긍정적인 감정이나 태도를 표현하는 손짓이다. 상대방에게 “좋아, 인정, 굿, 오케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언어적 표현일뿐 아니라 의미 있고 충분한 제스처다.
손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오늘 상황에 걸맞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애벌레가 된 나비가 고치를 만든 후 그를 둘러싼 껍데기를 찢고 밖으로 나온다. 좁은 고치 속을 빠져나오는 나비는 그 진통을 거치는 동안 날개에 힘이 생겨 날아오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탈출 과정은 외부 환경에 적응하고 날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이다. 고통을 겪는 동안 심한 마찰로 인해 날개는 날 수 있을 만큼 강건해지지 않을까.
손자는 새 학교와 기숙사라는 낯설고 서투른 공간에서 친구와 관계를 맺어야 하고, 폭넓고 깊은 학문의 초입에서 헤맬 수 있다. 스스로 깨우치고 헤쳐 나가야 할 많은 과제 앞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새로운 위기를 도전으로 극복하고 통과하길 바란다. 자기만의 몫을 헤쳐 나온 후 그의 날개는 단단해져 비상할 것이다.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을 맞대고 오케이를 만들어 올리리라.
오케이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동작이라고 한다, 그로 인하여 인간이 만유의 영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터. 도구와 불 등을 사용했다는 요소로 연결된 이유이지 않을까. 원숭이 손가락을 눈여겨보며 엄지가 짧아 검지와 만날 수 없었다는 걸 발견했다. 엄지를 사용하는 오케이 단어 속에 숨겨진 비밀이랄까.
차창으로 손자가 엄지손가락을 올려 동그라미를 그리며 떠나는 모습이 보인다.
<이희숙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