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향한 우크라이나 연주자의 시선

2024-09-30

우크라이나 바이올리니스트 드미트로 우도비첸코(25)는 지난 6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다. 그가 9월 서울에서 국립심포니와 협연 무대를, 울진·경주·당진·서귀포에서 리사이틀 연주를 펼쳤다.

우승자다운 연주였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본 시벨리우스 협주곡은 우직한 일관성과 절묘한 기교가 돋보였다. 울진, 당진에서 연주한 시마노프스키의 ‘신화’는 가공할 기교와 팔색조 같은 섬세함을 남겼고,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은 쌉싸래하고 쓸쓸한 가을 풍경이 떠올랐다.

“국민들에게 짧게나마 행복감을 드리고 싶었다. 어떻게든 삶은 계속된다고 위로하고 싶었다”고 콩쿠르 우승 소감을 밝힌 우도비첸코는 시상식에서 심사위원인 바딤 레핀과 악수를 거부해 화제가 됐다. 23일 기자들과 만난 우도비첸코는 “레핀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존경하지만 러시아 정부 주최 축제의 감독을 맡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당국에 협조한 인물과 악수할 수 없었다”는 그의 설명에 주위가 숙연해졌다.

우도비첸코는 콩쿠르 결선에서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모스크바 출신 작곡가의 작품이다. “쇼스타코비치 음악 자체를 좋아한다”는 우도비첸코는 “음악은 정치적 맥락을 벗어나 있다. 소련의 탄압을 받았던 쇼스타코비치의 협주곡 1번은 제가 처한 현실과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곡”이라고 말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국내 공연 예술계에서도 러시아 음악이 화두로 떠올랐었다. ‘러시아 작곡가들의 곡은 무조건 연주해선 안 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었고, 바딤 레핀의 아내이자 친 푸틴 인사로 분류되는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의회는 러시아 음악가들의 작품을 TV, 라디오, 공공장소에서 연주하거나 공연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단, 금지 대상은 소련이 해제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1991년 이후 러시아 시민인 이들의 작품에 한한다고 선을 그었다. 차이콥스키, 쇼스타코비치 등 예전 작곡가들과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은 허용했다.

2023년에는 권위 있는 조직인 국제콩쿠르세계연맹(WFIMC)이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제명했다. 쇼팽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혔지만 러시아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대회였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 우도비첸코는 비올리스트인 부모님이 전쟁 때 타국으로 흩어졌다가 최근 우크라이나에 함께 계신다고 했다. “매일 주변에서 죽음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고 불안한 조국의 상황을 전하는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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