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정원] 여러분, 봉급은 줘봤습니까?

2024-10-06

나이 지긋한 분들은 봉급날의 추억이 있다. 요즘처럼 계좌로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봉급날 현찰이 들어 있는 봉투를 직접 받았다. 나도 젊은 시절 장교로 만 4년을 근무했고 전역 후 곧바로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으니 매달 신나는 봉급날이 있었다.

이 봉급날이 얼마나 ‘무서운 날’인지를 깨닫는 일이 생겼다. 1983년 정보산업에 뛰어들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저술한 ‘제3의 물결’을 읽고 나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제 세상은 산업혁명 시대처럼 천지개벽을 할 것이다. 인류 문명이 바뀌니 이걸 조금이라도 빨리 받아들이는 게 나도 살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퇴직금을 받아 여의도에 ‘정보연구소’를 차리고 정보화사회에 관한 연구와 교육을 시작했다. 숭고한 사명과 벅찬 희망으로 지식산업에 진출한 것인데 곧바로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가장 무서운 게 봉급날이었다. 봉급날이 다가오면 식욕이 사라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봉급날 전날은 악몽을 꾸기 일쑤였다. 높은 절벽에 매달려 있는데 팔에 기운이 빠져 위로 올라갈 힘은 없고 밑을 내려다보면 천길 낭떠러지다. 진땀을 흘리다 손에 힘이 빠져 추락하면서 비명과 함께 깨는 일이 여러번 있었다. 그 달콤했던 봉급날이 고통스러운 날로 바뀔 줄이야.

기적이 일어났다. 1985년 앨빈 토플러가 우리나라에 왔다. 그는 일주일간 머물면서 당시 대통령을 만나고 언론 인터뷰를 하고 특별강연을 했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제3의 물결에 빠져든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때부터 연구소에 강의와 자문을 의뢰하는 기업이 늘어났고 탄탄대로에 올라서게 됐다. 그 후 정보화사회가 진전되면서 나에게는 여러가지 기회가 생겼다. 주요 방송국에서 방송 진행을 했고 정부 정책자문도 하게 됐다. 대학 총장을 했고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을 맡아서 보람 있는 일을 했다.

중앙공무원교육원은 정부 각 부처 모든 국가공무원의 교육을 책임지는 곳이다. 행정고시를 합격한 신임 사무관들은 이곳에서 일정한 교육을 받고 각 부처에 배속된다. 국실장급 고위공직자들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장차관 워크숍도 이곳에서 열린다. 일년에 100개 이상의 장·단기 교육과정이 운영된다.

나는 공무원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했다. “여러분, 봉급을 줘봤습니까?” 공무원들은 평생 동안 봉급을 받으며 살아간다. 미지급 사태가 생길 일도 없다. 이익을 창출하는 일이 아니라 예산을 집행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수많은 중소기업인들과 영세사업자들이 매달 봉급날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걸 알 수가 없다. 봉급은 줘봤느냐고 묻는 내 목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고 실토한 고위공무원도 있었다.

지금 이 질문을 다시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금배지 달고 많은 특권을 누리며 매달 고액의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들이다. 과연 이들은 봉급날의 애환을 알고 있을까.

“국회의원 여러분, 봉급은 줘봤습니까?”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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