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어를 학문으로 마주한 지 31년. 오는 9일 제578돌 한글날 경축식에서 최고 훈격인 옥관문화훈장을 받게 된 노교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간다(神田)외어대 하마노우에 미유키(浜之上 幸·67) 부학장 이야기다. 7일 오전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하마노우에 부학장은 훈장을 받게 된 건 학생들과 학교, 스승과 부모님 덕이라며 공을 돌렸다.
하마노우에 부학장은 30년이 넘도록 ‘현대 한국어시상의 문법 체계’를 연구해왔다. 아울러 1996년부터 일본에서 전국 한국어 스피치 대회를 개최하고 2006년 한국어학연보를 창간하는 등 한국어 보급에 앞장서왔다.
일본 후쿠오카(福岡) 현에서 태어난 그는 재수 끝에 1976년 도쿄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 탄탄한 직장을 잡으라는 부모님의 바람을 따랐던 착한 아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고3 시절이던 1974년, 한 신문에서 접한 기사가 그에게 꿈을 줬다. 육영수 여사의 사망 소식 뒤에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한 달간 한국에 대한 연재 기사가 실렸다. 일본 기자가 한국 곳곳을 돌아보며 쓴 기사는 교과서에서 보던 이야기와는 전혀 달랐다. "독재 정권, 기생관광 같은 안 좋은 면만 알고 있었는데, 한국인 생활상과 문화를 소개한 신문 기사를 읽고 나니 ‘한국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었습니다. 감동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생겨난 한국,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가교(架橋)병’이라고 불렀다. “10대 후반 이상하게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때가 있지 않나요. 이래선 안 된다, 일본 사람으로 한·일간 가교 구실을 하고 싶었다고 생각했죠.” 도쿄대 경제학과 3학년 시절 '아시아 경제'를 주제로 한 졸업논문 준비 세미나에서 선택한 것도 한국경제였다. 당시엔 한국어를 전혀 몰라 일본어로 된 논문을 읽었다.
한국어로 된 논문을 보고 싶어 동경외대 조선어학과에 석 달을 청강생으로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회사에선 재무과에서 일했다. 직장 생활도 재미있었지만, ‘인생은 한 번밖에 없다’는 생각에 1년 4개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원래 하고 싶던 가교병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에 부모님을 설득했다고 한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10년 뒤면 교수가 될 수 있다”며 거짓말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도쿄외국어대를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1991년 한국 국비 장학생으로 서울대 박사과정에 참여했다.
귀국 후 1993년 간다외어대에서 한국어 교수가 되면서 꿈을 이뤘다. 하마노우에 부학장은 “이번 포상은 제가 받은 것이 아니라, 1000명 가까이 되는 졸업생들이 받은 것이다. 저는 그 옆자리에 있었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자신이 2년간 한국 정부 유학생으로 서울대에서 공부했던 일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했다. “생각해 보면 한국 국민이 낸 세금이 저에게 온 덕”에 훈장을 받을 수 있었단 설명이었다.
교수가 될 수 있다는 아들의 ‘뻥’을 믿어주며 뒷바라지했던 부모님, 그를 연구를 지원했던 스승들도 생각난다고도 했다. 하마노우에 부학장은 “한국어 연구자로서 일본에서의 한국어 연구를 더욱 발전해 나가는 것을 바란다”며 “이것이 진정으로 한국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마노우에 부학장은 아내의 건강 악화로 9일 한글날 훈장 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주일한국문화원이 별도로 일본서 이달 말 개최하는 전수식에서 훈장을 가슴에 달게 될 예정이다. 한편 이번 한글날엔 10년간 일본어로 박경리 소설 『토지』를 완역한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와 요시카와 나기, 시미즈 치사코가 세종문화상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