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터] 본업 아닌 '사이드 프로젝트'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2025-02-19

기술 기반 아이디어 지원하는

브라이언임팩트의 ‘사이드임팩트’

지난 17일 오전 1시. 월요일 출근을 몇 시간 앞둔 늦은 밤이지만 황성빈씨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맞벌이하며 여섯살 딸을 키우는 황씨 부부가 1년 넘게 본업 외에 몰두한 ‘사이드 프로젝트(side project)’가 있다. 학부모들이 동네 학원의 셔틀버스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지도 서비스 ‘아이셔틀’이다. 이날 황씨는 서비스를 보완하기 위한 대규모 업데이트를 마쳤다.

처음에는 가까운 학부모들에게만 공유할 요량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온라인 카페에 데이터를 공유하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우리동네 학원도 추가해 주세요” “이거 너무 편하네요!” 호응이 이어졌다. 간단한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아이셔틀은 1년 만에 5000명 넘는 회원들이 이용하는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자신의 본업은 유지한 채 업무 외 시간을 활용해 개인이 원하는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글로벌 IT 업계에서도 사이드 프로젝트와 해커톤 문화는 혁신의 원천이었다. 구글은 업무 시간의 20%를 개인 프로젝트에 할애하도록 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Like) 버튼’도 사내 해커톤에서 탄생했다. 국내에서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존재했지만 대부분 아이디어 차원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혁신의 씨앗’을 만드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지속가능한 서비스나 제품으로 확장하는 실험이 국내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설립한 공익재단 브라이언임팩트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발굴해 지원하는 ‘사이드임팩트(Side Impact)’ 사업을 2023년부터 진행 중이다. 사회에 유의미한 기술 기반 서비스가 자생할 수 있도록 운영비를 지원하고 커뮤니티를 연결하고 있다.

엄마를 위해 만든 ‘키오스크 교육’ 앱

개발자 김민경씨는 회사 근처 맥도날드에서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는 중장년층. “화면을 몇 번 눌러야 하는 거야?” “이거 주문 다 된 거 맞아?” 소란 속에 차례를 기다리던 젊은 사람들이 직접 도와주는 경우도 많았다. 스마트폰이 익숙한 젊은 세대도 가끔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부모 세대는 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만든 시니어 전용 키오스크 교육앱 ‘눈높이 키오스크’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처음엔 단순히 엄마에게 ‘키오스크 사용법’을 알려주는 앱을 만들어 주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주변에 공유했더니 “우리 부모님도 이거 어려워하시는데”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렇게 5명으로 팀을 꾸려 제대로 된 서비스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시니어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키오스크 작동이 어렵다기 보다 ‘디지털 인터렉션’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테면 로딩 이미지가 뜨면 기다려야 한다거나, 단계별 진행상황은 바(bar) 형태로 표시된다거나 하는 디지털 규칙에 익숙치 않다는 것이었다.

“팀원들과 함께 게임 형식으로 키오스크를 쉽게 배울 수 있는 앱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자금 문제에 부딪혔죠. 팀원끼리 돈을 모아 서버 비용을 충당하는 식으로 운영했지만, 유지가 쉽지 않았어요. 그때 브라이언임팩트의 ‘사이드임팩트’ 사업을 알게 됐어요.”

사이드임팩트는 두개의 지원 트랙으로 나뉜다. 아이디어 수준의 팀이 실제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도록 초기 자금 500만원을 지원하는 ‘스파크 트랙’과 이미 사용자가 확보된 서비스를 위해 고도화 자금 1200만원을 주는 ‘임팩트 트랙’이다. 2023년 10팀, 2024년 30개 팀이 지원금을 받았다.

김민경씨의 ‘눈높이 키오스크’는 2024년 스파크 트랙에 선정돼 지원금을 받았다. “저희처럼 ‘이게 필요할 것 같아서’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들이 많아요. 하지만 서비스 규모가 커지면 돈이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개인이 유지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사이드임팩트가 아니었다면, 아마 저희도 아이디어 수준으로 사라졌을 겁니다.”

동네학원의 셔틀버스 정보를 지도 서비스로 제공하는 ‘아이셔틀’도 2024년 스파크 트랙 선정 팀이다. 황성빈씨는 “인터넷에 없는 게 없다고 하지만 동네 학원 셔틀 정보는 없었다”며 “아이가 학원 갈 나이가 됐는데 정보가 없어서 직접 데이터를 정리했고 그게 아까워 사람들에게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이드임팩트, 기술 기반 공익 프로젝트에 지원금 제공

처음엔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입력하며 운영했지만,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해졌다. 그는 사이드임팩트 지원을 받아 개발자를 구했고, 6개월 작업 끝에 지난 17일 ‘아이셔틀’을 정식 서비스로 선보였다. “시작은 말 그대로 사이드 프로젝트였죠. 재단 지원을 받아 사용자가 늘면서 공익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30세대를 위한 정책 정보공유 플랫폼 ‘열고닫기’는 원규희 도도한콜라보 대표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원 대표는 “주거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정부 정책이나 지자체 사업을 뒤져봤는데 흩어진 정보를 잘 찾는 게 쉽지 않았다”며 “청년 지원정책에 대한 정보격차는 경제적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직접 서비스를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0년 말 사이드 프로젝트로 선보인 서비스는 고도화 작업을 거듭해 현재 월 11만 명이 찾는 플랫폼으로 커졌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공익 프로젝트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가장 먼저 MVP(최소기능제품)를 제작해야 하고, 실사용자의 피드백을 받아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개인 프로젝트들이 이 단계에서 좌절된다는 점이다. 조상욱 브라이언임팩트 부장은 “사이드임팩트는 바로 이 ‘초기 실행 단계’를 지원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며 “아이디어를 계속 실험할 수 있도록 공백을 채우고, 투자받을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고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누구나 도전

사이드 프로젝트가 지원금을 받는 방법은 아이디어 공모전이나 해커톤밖에 없었다. 하지만 참여 대상을 대학생으로 한정하거나 지원 자격을 명시하는 등 요건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사이드임팩트는 이러한 지원의 문을 활짝 열었다. MVP 단계에 접어들었고 법인 투자를 받지 않았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선정팀의 연령과 배경도 다양하다.

2024년 사이드임팩트에 선발된 ‘루바토’ 프로젝트는 고등학생 3명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용인외대부고 박진(19)군은 같은 학교 친구와 함께 시각장애인이 점자 악보 없이도 피아노를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진동장갑 ‘루바토’를 개발했다. 피아노 건반과 손가락의 위치를 인식해 연주해야 할 손가락에 진동을 주는 시스템이다. 장갑을 착용하면 연주자가 별도의 악보 없이도 손의 감각을 통해 자연스럽게 피아노 연주법을 익힐 수 있다.

대학생 창업동아리에서 팀을 꾸려 선정된 팀도 있다. 숙명여대 학생들로 구성된 ‘같이가치’팀은 장애인이나 중환자의 욕창을 예방하는 방석 ‘PRESSURE(프레셔)’를 개발했다. 이 방석은 자이로 센서로 사용자의 압력을 유추해 욕창 발생 위험을 알려주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기획 담당인 김세은씨는 장애인들의 일상 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나가고 자체 리서치도 진행하면서 욕창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는 “온종일 앉아 있다 보니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서 피부 조직이 손상되는데 치료하는 비용과 시간이 상당해서 예방이 답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시서남보조기기센터와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등 기관과 협력해 당사자 인터뷰를 40명 넘게 진행하면서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을 종합했다. 기존에도 욕창 예방 제품이 있었지만 가격이 수십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쌌고, 맞춤형 제품은 가격이 더 높았다. 특히 기계가 자동으로 체위를 바꿔주는 방식은 사용자들의 거부감이 컸다. 원가를 낮추면서 자연스럽게 자세를 바꿀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능이 필요했다.

같이가치 팀은 사이드임팩트 지원금을 받아 5개월 만에 수작업으로 제품을 만들었다. 값이 저렴한 자이로 센서 14개를 내장한 스마트방석이다. 현재 제작 공정을 획일화하고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생산 공장과 조율을 마친 상태다. 김세은씨는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겨우 MVP 단계에 왔고, 여기서 멈출 수도 있었지만 사이드임팩트 지원 덕분에 지금처럼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영리와 기술을 연결하다

사이드임팩트의 또 다른 특징은 비영리조직과 기술을 연결한다는 데 있다. 기존 비영리단체는 기술 기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어려운 구조다. 내부에 개발자를 두기 어렵고, 공익 프로젝트 개발을 위한 자금 조달과 수익 모델을 설계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기술 혁신은 주로 스타트업과 기업의 영역이었고, 비영리는 오프라인 활동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사이드임팩트는 비영리단체에서 기술 기반 프로젝트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마련하고 있다.

사단법인 바다살리기네트워크는 지난해 사이드임팩트 지원을 받아 해양 정화 봉사활동에 특화된 봉사자 모집 플랫폼 ‘오션키퍼’를 개발했다. 해양 정화 봉사는 연안 정화, 부유 쓰레기 수거, 침적 쓰레기 제거 등 활동 유형에 따라 필요한 봉사자가 다르다. 예를 들어, 특히 침적 쓰레기 정화 활동은 스쿠버다이버 자격증이 필요하고, 부유 쓰레기를 수거하려면 프리다이빙이나 수영이 가능해야 참여할 수 있다.

바다살리기네트워크는 해양보호와 관련된 전국 20여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경제조직이 모인 협의체다. 최은원 바다살리기네트워크 대표는 “기존에는 개별 단체들이 각각 봉사자를 모집하다보니 해양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았다”면서 “단체들도 수작업으로 봉사자들을 관리하다보니 일정이 바뀌거나 봉사 인원이 조정될 때마다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 오션키퍼 앱이다. 봉사활동 유형별로 지원 조건을 설정하고, 개인이 원하는 활동을 찾아 쉽게 신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존에 단체가 수기로 관리하던 개인정보 관리 문제도 해결했다. 최은원 대표는 “비영리단체라고 해서 기술을 활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며 “오히려 기술을 잘 접목하면 더 많은 사람이 쉽게 공익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고민에서 시작된 또 다른 프로젝트가 있다. ‘계단정복지도’는 휠체어 사용자도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계단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기반의 접근성 지도 플랫폼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경사로가 있는지 혹은 계단만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마련된 서비스다.

장애인을 위한 지도 서비스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데이터에 의존하기 때문에 실제 사용자의 경험이 반영되지 않았다. 지자체에서 ‘휠체어 접근 가능’이라고 표시된 건물이라도, 막상 가보면 너무 가파르거나 중간에 문턱이 있어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 프로젝트를 추진한 박수빈 계단뿌셔클럽 공동대표는 건물의 출입구 사진과 진출입로의 계단 여부, 엘리베이터 설치 여부 등 정보를 한데 모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기존의 행정기관 데이터를 단순히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사진과 정보를 입력해 규격화된 데이터를 축적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시민 참여로 공개된 장소는 누적 5만8000곳에 이른다. 계단정복지도는 사이드임팩트 사업에 2년 연속 선정됐다. 총 24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브라이언임팩트는 올해도 사이드임팩트에 참여할 새로운 팀을 모집한다. 초기 MVP 단계를 지원하는 스파크 트랙은 6월, 실사용자를 보유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임팩트 트랙은 9월로 예정돼 있다. 박진석 브라이언임팩트 부장은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고, 하나의 방법으로 결론 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의 폭을 넓히고 있다”며 “기술이 공익과 만나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사이드임팩트가 그 연결고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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