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누적적자가 올해 안으로 21조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반대로 KTX 등 철도의 요금인상 논의는 공회전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재무구조 악화를 방관할 경우 안전사고 증가와 함께 국가재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코레일은 부채는 20조943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코레일의 연간 손실액이 4000억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올해 안에 누적적자가 21조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한 상황이다.
코레일의 만성적자는 국제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해 7월 코레일의 신용등급을 대한민국 정부와 같은 'Aa2'에서 'Aa3' 하향평가 했다가 올해 다시 'Aa2'로 상향했다. 재정악화로 인해 독자신용도가 떨어진 탓이다.
원래 공기업은 해당 국가와 신용등급을 공유한다. 적자가 나더라도 국가에서 재정지원을 통해 감당할 것이라는 믿음이 반영돼 있어서다. 그럼에도 독자적으로 신용등급이 떨어진다는 것은 국가의 지원을 상쇄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반증이다.
문제는 코레일은 경영구조상 적자가 불가피한 기업이라는 것이다. 공익성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철도요금은 낮게 유지되는 반면 시설노후화로 인한 유지관리비와 전기료, 인건비 등 원가부담은 계속해서 늘고 있어서다.
코레일의 임직원 수는 3만2380명으로 우리나라 공기업 가운데 가장 인원이 많다. 비정규직과 자회사 임직원까지 더하면 4만명이 넘는다. 임금인상을 조금만 하더라도 증가되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인력 800명 충원과 기본급 2.5%를 요구하며 18일부터 '준법투쟁'에 돌입했다.
전기료 부담도 만만찮은 부담이다. 정부는 지난달 말 전기요금 인상안 발표를 통해 주택용·일반용 전기요금을 동결하는 대신 산업용전기요금을 9.7% 인상하기로 했다. 지난해 코레일이 낸 전기요금 5329억원에 이를 대입하면 당장 516억원의 추가 지출이 더 필요해진다.
철도유지보수 관리를 코레일이 떠맡고 있는 것도 적자의 원인으로 꼽힌다. 코레일은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라 전체 철도시설에 대한 유지보수를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다. 기반시설물만 17만개가 넘는다. SR의 수서노선과 SRT열차 등 코레일이 운영하지 않는 철로와 열차까지 코레일이 수리‧관리한다.
현재 전국 철도시설물 중 사용기간이 10년 미만은 전체의 19%에 불과하다. 30년 이상 쓴 시설물이 14%가 넘고, 20~30년이 된 시설물도 24.7%에 달한다. 코레일은 약 7000명의 유지보수담당 인력으로 이 모든 시설물을 점검하고 보수해야 한다.
코레일에선 KTX 요금을 인상해 적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문희 코레일 사장은 지난 1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부채해결을 위한 해결방안으로 운임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문희 사장은 "KTX 요금이 2011년 4.9% 올린 것을 끝으로 13년째 동결 중"이라면서 "그사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4.2%가 올랐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KTX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KTX 요금을 올리면 적자 해소 뿐 아니라 속도와 서비스별 철도등급의 다양화도 안착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KTX로 쏠리는 승객들이 ITX와 무궁화 등 비고속열차로 분산될 수 있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철도전문가 A씨는 "이대로 코레일의 적자가 누적되면 국가재정에도 큰 부담이 될 뿐 아니라 '민영화' 주장이 고개를 들 수 있다"면서 "당장 전체 노선에 대한 요금인상이 부담스럽다면 이용객이 몰리는 첨두시간대와 비첨두시간대의 요금을 차별화하는 방식으로 요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고 했다.
철도업계에선 요금인상을 위해선 정치권에서의 결단과 합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철도 요금인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계속 있었지만 반발을 우려한 정부와 정치권에서 요금인상을 막아온 경향이 크다"면서 "국회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친 뒤 거대 여야의 합의하에 요금인상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