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째 파킨슨병을 앓아온 50대 남성 A씨는 도파민 약물치료 등을 받아왔지만 갈수록 증상이 악화됐다. 파킨슨병 환자들에게서 흔한 ‘보행 동결(걷다가 발이 땅에 얼어붙듯 순간적으로 멈추는 증상)’이 나타나 혼자서는 화장실에 가기도 어려워졌다. 하지만 지난해 배아줄기세포를 이식받은 뒤 이런 증상이 거의 사라졌다. 하루 1시간 가량 걷기 운동이 가능해졌고, 탁구와 배드민턴을 칠 수 있게 됐다.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이필휴 교수,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신경외과 장진우 교수 임상 연구팀은 배아줄기세포를 활용한 치료제를 투약해 난치병인 파킨슨병 환자의 증상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고 12일 밝혔다.
파킨슨병은 뇌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어가며 운동 조절에 문제를 일으키는 병이다. 중장년층에서 주로 발생한다. 대부분 신경퇴행으로 인해 부족해진 도파민을 보충하거나, 도파민의 효과를 증진시켜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 치료를 받는다. 도파민 약물치료는 초기에는 대체로 증상이 개선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약물 효과가 줄어들고 부작용을 겪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배아줄기세포를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전구세포(신경세포로 자라기 전 단계의 세포)’로 분화시킨 뒤 12명의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 주입했다. A씨와 같이 파킨슨병 진단 후 5년 이상 앓은 만 50~75세의 환자들로 기존 도파민 약물치료에도 효과가 떨어지거나 보행 동결 등의 증상이 나타난 환자들만 대상이 됐다.
연구팀은 전체 투여 대상자 12명 중 저용량(315만개 세포)과 고용량(630만개 세포)을 투여한지 1년이 경과한 각 환자 그룹에서 증상 변화를 측정했다. 파킨슨병의 증상을 심각도에 따라 단계가 높아지도록 1~5단계로 구분한 호엔야척도에서 저용량 투여자의 경우 평균 19.4%(3.7단계 -〉 3단계)가 호전됐다. 고용량 투여자에서는 평균 44.4%(3.7단계 -〉 2단계)가 좋아졌다. 연구팀은 “고용량 투여자의 호전 정도는 중증 상태에서 질병의 초기 상태로 호전됐다”라고 설명했다.
객관적인 운동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파킨슨 평가척도에서는 저용량 투여자는 22.7%, 고용량 투여자는 25.3% 개선됐다. 보행 동결 증상은 저용량 투여자 2명 중 1명에서 아예 사라졌고, 고용량 투여자 3명에서는 아예 사라졌다.(100% 호전) 이는 정상으로의 회복을 의미한다. 일부 투여자의 경우 파킨슨 평가척도가 1년후 40.7%까지 크게 개선됐다.
도파민 뇌영상 촬영 결과 도파민을 분비하는 뇌 부위와 눈에 띄게 커졌다. 연구팀은 “뇌에 주입한 도파민 신경전구세포가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환자에서 세포 이식과 관련된 특이한 부작용도 관찰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이식한 12명 중 1명이 이식 부위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부위에 경미한 출혈이 관찰됐으나 이상 증상이나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식 후 2년까지 추적 관찰하며 경과를 지켜볼 계획이다.
치료제 개발자인 연세대학교의대 생리학교실 김동욱 교수는 “우리가 개발한 세포치료제는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활용한 것으로 파킨슨병 치료 효과가 우수한 것은 물론 보행동결이나 약효 소진 등 대표적인 부작용들을 줄였다”며 “파킨슨병을 오래 앓던 환자가 투여 후 배드민턴과 산책을 즐기게 된 만큼 근본적인 치료법으로 환자들이 건강한 삶을 되찾는 것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