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낭보’와 ‘비보’들이 교차한 2024년 ‘귀감’이 될 만한 이들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인물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2025년을 살아가야 할 한국인들에게 하나의 ‘이정표’다. 올해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을 기록한다.
정치·사회 | ‘세월호 잠수사’ 한재명…‘재야 운동권 대부’ 장기표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에 나선 민간잠수사 한재명씨가 9월25일 49세로 별세했다. 2014년 예비 신랑이었던 한씨는 맹골수도로 뛰어들었다. 당시 수색 활동은 그에게 잠수병과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세월호 잠수사’라는 과거가 국내 일터에서 환영받지 못한 탓에 그는 이라크에서 잠수사 일을 해야 했다. 잠수를 마치고 쓰러진 한씨는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한씨는 생전 습관처럼 “아이들이 저를 지켜주겠죠”라고 말했다.
길 위에서 투쟁하는 약자들의 밥을 지어온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 대표 유희씨가 6월18일 65세로 별세했다. 1988년 서울 청계천에서 공구 노점을 하던 유씨는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씨가 노점 단속에 반발해 분신한 1995년부터 집회 현장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국밥을 끓였다. 쌍용차·콜트콜텍·동양시멘트·세종호텔 등의 투쟁 현장에도 그가 지은 밥이 있었다. 유씨가 생전 당부한 자신의 묘비명은 ‘밥은 하늘이다’였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인 김성주 할머니가 10월5일 95세로 별세했다. 14세 때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 제작소로 강제동원된 김 할머니는 철판 자르는 일을 하다 손가락을 잘렸다. 구사일생으로 귀국했지만 ‘정신대’라는 오해를 받으며 숨죽이며 살아가야 했다. 2012년 10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그러나 제대로 사과 한 번 받지 못하고 떠났다.
주금용 할머니는 ‘재판조차 못 받아보고’ 3월17일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주 할머니는 1945년 2월 일본 도야마에 있는 군수회사 후지코시에 강제동원됐다.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주 할머니는 광복 후 한참이 지나서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2019년 4월 광주지법에 후지코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일본 정부의 비협조로 재판 한 번 받아보지 못했다.
‘재야 운동권 대부’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9월22일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 법학과 학생이던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소식을 접하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민청학련 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간 수감됐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했다. 민주화 이후 현실 정치에 나섰지만 매번 낙선했다.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배우자 손명순 여사가 3월7일 95세로 별세했다. 1951년 결혼해 2015년 YS 서거 전까지 65년간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림자 내조의 달인’ ‘정치적 동반자’로 불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10월23일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코오롱상사 사장을 거쳐 13~18대 6선 의원을 지냈고, 17대 국회 후반기 부의장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영일대군’ ‘만사형통’으로 불리는 실세였다. 2012년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년2개월 수감됐고, 2019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재수감됐다.
경북 칠곡 할매래퍼그룹 ‘수니와 칠공주’ 멤버인 서무석 할머니가 10월15일 87세로 별세했다. 서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등 시대적 상황으로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 칠순이 넘어서야 한글을 배운 그는 비슷한 처지의 할머니들과 ‘수니와 칠공주’의 멤버로 활동했다. 암투병을 하면서도 돌아가시기 열흘 전까지 공연을 펼쳤다.
경제 | ‘꿈의 신소재’ 조석래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3월29일 타계했다. 향년 89세. 1935년 창업주 고 조홍제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82년 효성중공업 회장직을 이어받아 35년간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효성은 1997년 스판덱스 상업화에 성공했고, 2011년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고성능 탄소섬유를 세계에서 세 번째,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했다. 그는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이 아닌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며 기술을 중시했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가 90세를 일기로 지난 3월 별세했다. 이스라엘계 미국인인 그는 행동경제학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심리학자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보고 인간의 감정이나 심리적 측면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하는 주류경제학과 대비된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문화·스포츠 | 시대를 상징하는 ‘뒷것’ 김민기…‘일용 엄니’ 김수미
‘시대의 천재’이자 ‘뒷것’인 학전 김민기 대표가 7월21일 73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가수이자 공연 기획자였다. 1970년대에는 ‘아침이슬’ 작곡가이자 ‘친구’의 가수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발자국을 남겼다. 1990년대엔 학전 소극장을 개관해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올리며 대학로 소극장 운동의 중심이 됐고, 김광석·동물원·들국화·안치환·나윤선의 콘서트도 열었다. 학전은 경영난으로 지난 3월 폐관했다. 고인은 생전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는 걸 극도로 꺼리며 ‘뒷것’을 자처했다.
‘진보적 지성의 표상’ 홍세화 장발장 은행장이 4월18일 77세로 별세했다. 1995년 출간된 자전적 에세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비)는 ‘톨레랑스’(관용)라는 표현을 유행시키며 흑백논리가 지배하던 한국 사회에 지적 충격을 줬다. 2015년에는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돼 교도소에서 노역을 하는 이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 은행을 설립했다.
한국 민중문학의 거목 신경림 시인이 5월22일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1973년 소외된 농촌의 열악한 현실과 농민들의 삶의 애환을 묘사한 첫 시집 <농무>를 출간해 문단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대중의 삶과 괴리된 현학적인 작품을 경계하며 당대의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뚜렷한 문학관을 견지했다. 1970~19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섰고,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규탄하는 선언에 동참했다.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 불린 원로 배우 남궁원씨(본명 홍경일)가 2월5일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선 굵은 이국적인 외모와 중후한 분위기를 가진 그는 1959년 영화 <그 밤이 다시 오면>으로 데뷔했다. 이후 반세기 동안 <빨간 마후라>(1964), <화녀>(1971), <피막>(1980) 등 340편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영원한 ‘일용 엄니’ 김수미씨가 10월25일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1980년부터 방영된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서른 살에 시작해 22년간 이어진 시골 할머니 ‘일용네’ 연기는 그를 ‘국민 배우’ 반열에 올려놨다. 영화 <마파도> <육혈포 강도단>,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도 그의 걸쭉한 입담과 코믹 연기가 이어졌다. 요리인이자 작가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고향 남도 음식에 대한 책도 여러 권 펴냈다.
가수 현철씨(본명 강상수)가 7월15일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년 가까운 무명생활 끝에 1980년대 들어 빛을 봤다. 고생한 아내를 생각하며 부른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시작으로 ‘사랑은 나비인가봐’ ‘들국화 여인’ 등이 잇따라 인기를 얻었다.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씨와 함께 ‘트로트계 4대 천황’으로 불렸다.
‘한국 여자배구의 개척자’ 조혜정 전 프로배구 여자부 GS칼텍스 감독이 10월30일 71세로 별세했다. 170㎝가 되지 않는 키로 1970년 국가대표에 처음 뽑힌 조 전 감독은 ‘나는 작은 새’로 불리며 한국 배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한국에 올림픽 첫 구기종목 메달을 안겼다. 2010년 GS칼텍스의 감독이 돼 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사령탑으로 기록됐다.
해외 | 푸틴 ‘최대 정적’ 나발니…세기의 ‘미남·미녀’ 알랭들롱·올리비아 핫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가 2월16일 시베리아 감옥에서 47세의 나이로 숨졌다. 변호사와 정치 운동가로 활동하며 푸틴 대통령의 비리를 폭로했던 나발니는 2018년 대선에도 출마했으나 당선되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의 탄압을 받은 인사들이 대부분 망명길을 택한 것과 달리 그는 러시아를 오가며 저항을 계속했다. 수차례 암살 위협에서 살아남았으나 지난해 ‘극단주의 선동’ 혐의로 징역 19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결국 의문사했다.
만화 <드래곤볼>과 <닥터슬럼프> 등을 그린 일본 작가 도리야마 아키라가 3월1일 급성 경막하 출혈로 세상을 떴다. 향년 68세. 도리야마는 1978년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한 <원더 아일랜드>로 데뷔한 뒤 <닥터슬럼프>로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다. 1984년부터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작품 <드래곤볼>을 소년 점프에 연재했다. 1995년까지 연재된 이 작품의 단행본은 2022년 기준 2억6000만부 이상의 발행 부수를 기록하며 일본식 만화인 ‘망가’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가 됐다.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측한 영국 이론 물리학자 피터 힉스 에든버러대 명예교수가 4월8일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1964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측했다. 힉스 입자는 우주 탄생의 원리를 설명하는 가설 중 가장 유력한 ‘표준 모형’을 설명하기 위해 정의된 입자다. 2013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과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힉스 입자의 존재가 학술적으로 확인됐다. 힉스 교수는 프랑수아 앙글레르 브뤼셀자유대 명예교수와 함께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세기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전 미국 미식축구 선수 O J 심슨이 4월10일 전립선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그는 1994년 전처 니콜 브라운과 그의 연인 론 골드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고, 살인사건 이후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이 TV로 생중계되면서 스포츠 영웅이었던 이미지가 실추됐다.
이란의 유력한 차기 최고지도자로 꼽히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5월19일 헬기 추락 사고로 숨졌다. 라이시 전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으로 출장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란 당국은 사고 원인을 악천후로 추정하면서도 “미국의 제재 때문에 헬기 수리를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라이시 전 대통령은 2022년 이란 내 히잡 시위를 강경 진압했고, 올해는 이스라엘과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란을 주축으로 한 반이스라엘 연대인 이른바 ‘저항의 축’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격화되며 친이란 무장세력 지도자들이 줄줄이 이스라엘에 의해 암살됐다. 7월31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미리 설치된 원격 조종 폭탄이 터지며 폭사했다.
9월27일엔 32년간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이끌어온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10월16일엔 1년여 전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설계했던 하마스 수장 야히야 신와르가 가자지구에서 사살됐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배우 ‘세기의 미남’ 알랭 들롱이 8월18일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35년 파리 남부 교외에서 태어난 그는 웨이터, 짐꾼 등을 전전하다 우연히 영화 제작자의 눈에 띄어 1957년 배우로 데뷔했다. 히트작 <태양은 가득히>로 스타덤에 올랐고 <일식> <레오파드> 등의 작품으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1991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훈했다.
인도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만모한 싱 전 인도 총리가 12월26일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70년대부터 인도 정부 수석 경제고문, 중앙은행 총재 등을 역임했다. 1991~1996년 재무장관으로서 사회주의 경제체제였던 인도를 시장경제 체제로 바꾸는 개혁을 추진했고 2004부터 10년간 총리를 지냈다. 임기 후반 집권 국민의회당 내부에서 정치 갈등과 부패 스캔들이 불거져 비판받았다.
‘영원한 줄리엣’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배우 올리비아 핫세가 12월27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핫세는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해 배우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은 프랑코 제페렐리 감독의 1968년작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당시 15세였던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명성을 떨쳤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69년 골든 글로브 신인상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줄리엣으로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