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유가족, 먼저 빈소 차려
광주시장 “미안해하지 말길”
사고 현장엔 잇단 추모 행렬
소주·국화 등 내려놓고 눈물
31일 낮 12시30분쯤 광주 광산구의 한 장례식장에 A씨(46)의 빈소가 차려졌다. 태국 국적의 결혼이주여성인 A씨는 지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이다.
나주에 사는 A씨는 12월 초 남편과 친정인 태국을 방문했다가 귀국하던 길이었다. 일 때문에 바빴던 남편 B씨는 며칠 먼저 귀국해 사고를 면했다. 빈소에서 아내의 영정을 바라보던 B씨는 “사고 전날 태국에서 출발하기 전 ‘잘 도착해서 연락하겠다’던 통화가 마지막이 됐다”며 고개를 떨궜다.
B씨는 빈소를 찾은 강기정 광주시장에게 “유골이라도 아내의 고향 태국에 보내주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말했다.
빈소를 설치한 유가족들은 다른 유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조용히 장례를 진행하고 있다. 광주 서구에 빈소를 마련한 또 다른 희생자 가족은 “취재를 정중히 거절합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조문을 마친 강 시장은 “유족들이 먼저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남은 유족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시장은 “오늘부터 일부 희생자들의 장례 절차가 시작되는 만큼 ‘미안해하지 마시라’는 말을 건넸는데도 재차 미안함을 전했다”고 밝혔다.
무안공항 대합실에 있는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고 새해를 맞는 상황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족들과 세웠던 새해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무안공항에서 사흘째 누나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이모씨(58)는 “부모 같은 누님이었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완도에 사는 이씨의 둘째 누나(63)는 평소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치매를 겪는 어머니를 모시는 것도 누나 몫이었다. 딸·손주와 함께 떠났던 이번 태국 여행은 누나에게는 수년 만에 일상을 벗어난 여행이었다. 이씨는 “지난주 토요일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라’며 누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렇게 마지막 여행이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새해가 됐지만 이씨는 매해 만났던 누나 가족을 영영 볼 수 없게 됐다.
사고 현장인 무안공항 남쪽 울타리에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처참하게 부서진 잔해가 보이는 곳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타까운 죽음, 평생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현장에 즉석밥이나 호떡, 초코파이, 커피음료, 소주, 맥주 등을 놓아두고 간 사람도 많았다. 하얀 국화꽃도 보였다. 한 여성은 “사고 현장이 이렇게 처참할 줄 몰랐다”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라며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