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꺾고 압승을 거뒀다. 선거 막바지에 일부 언론 매체들이 해리스의 승리 가능성을 보도하기도 했지만, 해리스 승리는 진보 성향 언론의 희망으로 끝났다.
트럼프의 승리를 첨단 산업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인 다수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기술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국과의 첨예한 패권 전쟁에서 트럼프가 해리스보다 중국을 상대하기에 더 적합한 인물로 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로 압축된 트럼프의 정책 슬로건에는 AI와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 산업과 국방 분야에서 도전장을 내민 중국에 대해 미국의 이익을 위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가 배어 있다.
미 정부 내 비효율성 갈수록 심각
방만한 시스템과 규제 개혁 위해
실리콘밸리 혁신가들 정치 참여
머스크는 중단없는 혁신의 아이콘
이미 집권 1기에서 트럼프는 동맹국 외교에서 이런 정책을 펼쳤다.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면 글로벌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파리 협약도 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글로벌 무대에서 큰 형 노릇을 하던 미국에 ‘아메리카 퍼스트’를 표방하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각국이 대응 전략을 짜느라 바쁘다.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빨리 끝내겠다는 공약을 실행하고 나면 그 사후 처리 부담을 유럽에 떠넘길까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미국에서 전략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자산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편 트럼프의 승리는 대외 정책뿐만 아니라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미국 정부의 비효율성과 부채 문제, 지역 간 불균형 등 국내 문제에 대해서도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가 지금까지 해오던 관행을 탈피해 새로운 해법을 찾아 주기를 바라는 희망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트럼프에 대한 이러한 희망을 증폭시키는데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실리콘밸리에서 혁신 사업가 일론 머스크가 큰 기여를 했다. 머스크가 미국 대선 역사상 최고인 2억 달러의 기부금을 트럼프 캠프에 기부했을 뿐만 아니라 대선 유세에도 적극 동참해 트럼프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그가 인수한 X(트위터)도 트럼프 지지와 홍보에 활용됐다.
머스크가 이렇게 트럼프를 위해 나선 데는 8년 전 트럼프 1기 대선에서 실리콘밸리에서는 드물게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벤처 캐피털리스트 피터 티엘의 역할이 있다. 티엘은 머스크와 페이팔을 공동 창업했던 동지다. 두 사람은 소위 말하는 페이팔 마피아다. 페이팔 이후 미국 국방 AI 선도 기업 팔렌티어를 공동 창업했던 티엘은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 경쟁력이 제로(0)에서 원(1)을 만들어 내는 실리콘밸리의 창조적 생태계에서 나온다는 점을 설파한 『제로 투 원』의 저자다. 그에 의하면 미국에 비해 중국은 ‘제로 투 원’ 창조 능력은 약하지만 ‘원’을 확보하면 ‘백(100)’으로 빠르게 늘리는데 강하다.
닷컴 시절에 페이팔을 이베이에 팔고 난 후 머스크는 과거 미 항공우주국(NASA)이 독점했던 우주 산업과 아무도 가 보지 않았던 전기차 산업에 뛰어들어 산업 혁신을 선도했다. 우선 2001년 페이팔 매각 자금으로 스페이스X를 창업했다. 2008년 거의 망할 뻔했던 이 회사를 살려 2019년 스타링크 서비스를 위한 첫 60개의 위성을 쏘아 올렸다. 2024년 9월 기준 스타링크 위성 수는 6426개로 5년 만에 100배 이상 늘었다.
테슬라는 머스크가 처음 시작한 회사가 아니었다. 2003년 두 명의 엔지니어가 창업한 테슬라에 머스크가 2004년 시리즈 A 투자금 750만 달러 중 65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이사회 의장이 됐다. 이후 머스크가 테슬라 투자를 지속하면서 2008년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 이후 2013년 나스닥 상장을 했고 현재 세계 제일 전기차 회사로 키웠다. 불과 6년 전만 해도 테슬라의 대량 생산 능력에 대해 의구심이 있었지만, 머스크는 본인이 공장에서 잠을 자면서까지 문제를 해결했다. 테슬라는 멈추지 않고 계속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 차량에서 실시간으로 획득한 데이터를 활용해 자율주행(오토 파일럿) 기술을 개발해 로보 택시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최근에는 휴머노이드 개발에 뛰어들었다. 머스크는 이 외에도 오픈 AI의 창업에도 참여하였고 지금은 X.AI를 창업해 독립된 AI 회사를 키우고 있다.
그럼 왜 기술 혁신을 선도한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이 정치에 관여하려고 하고 트럼프는 머스크와 같은 사람으로부터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AI와 휴머노이드가 세상을 바꿀 역사적 변곡점에서 혁신가들은 과거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기존의 정부 시스템과 규제가 세상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경쟁을 생각할 때 그동안 방치해온 정부 효율성 혁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국의 장기적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다. 국가의 경쟁력이 없으면 국민의 삶도 좋아질 수 없다. 머스크의 정치 참여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적지 않지만 세계 제일의 패권국조차도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명제를 가지고 정부 혁신을 하는데 정작 대한민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관료주의에 빠진 정부와 기업 모두가 왜 ‘트럼프+머스크’ 조합이 이런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