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메이지신궁 외원 나무는 살아남을까

2024-10-13

도쿄도, 외원 재개발 공사 추진

1000그루 벌목 계획 반발 터져

일 대표 예술가들도 비판 가세

끝까지 지켜 낼 수 있을지 관심

가끔 오가는 길에 마음에 꼭 들어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집이 있었다. 여러 그루의 나무와 꽃, 주인이 여기저기에 둔 화분으로 빼곡한 정원이 좋았다. 그중 가장 우람한 나무 한 그루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웬만한 가로수 못지않은 덩치가 집 전체를 우아하게 만드는 존재감이 있었다. 담장이 그리 높지 않아 까치발을 하면 정원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그게 제법 즐거웠다.

얼마 전 이 집에서 공사가 시작됐다. 오래된 건물, 주인의 정성이 묻어나던 정원은 사라졌다. 건축 자재가 집터를 채웠으니 조만간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될 모양이다. 그 우람한 나무는 어떻게 되었을까. 베어 없애 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워낙에 보기에 좋아 그렇게 하기엔 아깝다고 주인도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나무, 화초를 키우고 보호하는 일본인들의 진심을 종종 느껴 온 데 따른 나름의 추측이다.

지난달 28일 도쿄 신주쿠구, 미나토구에서 메이지신궁 외원 재개발 공사와 관련된 나무 보존 방안 설명회가 열렸다. 메이지신궁은 일본인들이 일본의 근대를 열었다고 여기는 메이지 일왕과 왕비를 기리는 신사다. 외원에는 야구장, 럭비장, 공원 등 신사 밖 공공시설이 들어서 있다. 도쿄도는 이곳을 정비해 초고층 빌딩 2동을 세우고 야구장 등을 새로 꾸미려 한다. 사업비가 우리 돈 3조원이 넘는다. ‘도쿄의 미래’를 그리겠다며 관련된 구상이 나온 것이 2010년이니 꽤 오래된 사업이고, 사업 추진 여부가 올해 있었던 도쿄도지사 선거의 쟁점 중 하나일 정도로 관심이 크다.

그런데 여론이 좋지 않다. 나무 때문이다. 사업을 진행하려면 수령 100년 이상 된 나무 1000그루 가까이를 베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반발이 커졌다.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등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가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지난해 3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사카모토 류이치는 말기암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에게 재개발 중단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번 부서진 것은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재개발에 반대했다. 논란이 커지면서 반대 서명에 참가한 사람만 20만명 정도에 달했다.

거센 반발에 사업자는 벌채 대상을 743그루로 줄이고 대신 나무 837그루를 새로 심는다는 수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반발 여론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설명회에서는 벌채 대상에서 124그루를 빼겠다는 수정안을 재차 제시했다.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냉담한 듯 보인다. 설명회에 참여한 주민들은 “벌채 대상 숫자를 속이지 말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반대론자들은 나무를 벨 경우 주민들이 산책, 운동 등의 장소로 깊이 애정하는 메이지신궁 외원이 훼손돼 삶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고 도심지의 온도가 높아지는 열섬현상 빈발 등 환경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메이지신궁 외원 나무 보호에 한 발도 물러서질 않을 것 같은 이런 태세는 나무, 꽃을 가꾸는 데 열심인 일상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도쿄의 주택가를 걷다 보면 담장, 대문, 현관 앞에 둔 화분을 볼 수 있다.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집이나 그렇다. 아름드리나무로 좁은 마당을 가득 채우다시피 한 집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사실 화분을 그저 무더기로 쌓거나 늘어놓은 곳도 종종 있다. 특별히 아름답게 가꾸겠다는 의지보다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나무, 꽃들을 두는 걸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을 갖게 하는 장면이다. 그래서 나무, 꽃을 향한 일본인의 태도가 더욱 인상적이다.

일본에 오기 전 살았던 한국의 집 근처를 떠올려 본다. 크고 작은 나무들로 잘 꾸민 공원이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공원을 벗어나면 기억에 남아있는 게 별로 없다. 일본의 거리가 좀 더 풍성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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