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뉴욕, 트럼프가 ‘돌려세운’ 자유의 여신

2025-11-07

“이름이 뭐지?”

“코를레오네에서 온 비토요.”

“아, 비토 코를레오네구나.”

세기의 명화 <대부>에는 대부 말론 브랜도가 어린 나이에 홀로 낡은 범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와 뉴욕 엘리스섬에서 입국 심사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탈리아 시칠리섬 중서부의 작은 마을인 코를레오네는 마피아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코를레오네를 마을이 아니라 성으로 잘못 이해한 이민국 직원의 실수로 이름이 ‘비토 코를레오네’가 돼버린 어린 소년이 대기소에서 창밖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본다. 이 모습은 ‘이민국가 미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이민자가 제일 많은 ‘세계 제1의 이민국가’다. 미국의 뒤를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등이 따르고 있지만 미국과는 비교가 안 된다. 미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4%지만 세계 이민자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7%나 된다. 2023년 현재 미국 이민자는 4780만명으로 인구의 14.3%를 차지한다. 7명 중 1명은 이민자라는 이야기다. 멕시코 국경 등을 통해 미국에 불법적으로 들어온 불법 이민자도 1000만명이 넘는다. 한민족도 한말의 격동 속에 121명이 사탕수수 노동자로 하와이에 이민을 오기 시작해 이제 그 수가 200만명을 넘어섰다.

미, 관용 상실로 ‘쇠락하는 강대국’에 불과

엄격히 이야기하자면, 아메리카 원주민 빼고 미국민들은 모두 이민자이거나 그 후손들이다. 202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원주민은 1.12%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미국인의 98.88%가 이민자이거나 그 후손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이처럼 ‘이민자의 나라’가 된 것은 ‘나라’가 아니라 ‘대륙’에 가까운 엄청난 크기의 땅에 인구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들도 대부분 학살과 유럽에서 가져온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오지로 강제 이주시켰으니, 새로운 노동력이 필요했다.

1620년 유럽의 종교적 갈등 속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 청교도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왔다. 1845~1872년 감자 역병과 영국의 경제 수탈로 아일랜드에 대기근이 발생해 인구의 8분의 1인 100만명이 굶어 죽자, 100만명이 미국행 화물선에 몸을 실었다. 그중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조상도 있었다. 1880년부터 1920년대 사이에 400만명의 이탈리아인들이 가난과 수탈을 피해 이민선에 몸을 실었다.

유럽만이 아니다. 멕시코의 많은 농민은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향했다. 1840년대 말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 속에 중국인들은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20세기 초 우리 조상들도 하와이로 왔다. 낡은 봉건적 억압과 수탈에 시달리는 유럽, 남미, 아시아의 민초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 ‘자유의 땅’이었다. 엘리스섬의 자유의 여신상이 이를 상징하고 있다. 미국 이민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프리카계들 노예들의 ‘강제 이민’이다. 그 결과, 미국은 백인 58.2%, 히스패닉 20%, 아프리카계 12%, 아시아계 7%, 원주민 2.9%(순수원주민 1.12%)의 ‘다인종 국가’가 됐다.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사실은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한 미국의 이민조차 인종주의, ‘반(反)소수주의’에 오염돼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1882년 ‘중국인 배제법’을 만들어 중국인의 이민을 금지했다. 1917년부터는 대부분 아시아로부터의 이민도 금지했다. 질병 보유자뿐만이 아니라 동성애자, 급진사상 의심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의 이민정책은 세계시장에서 미국의 패권이 약화하면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소련·동구 몰락 후 미국이 야심적으로 추구한 지구화는 미국의 자본이 대부분의 제조업을 싼 노동력의 중국 등으로 옮기게 했고, 싼 중국 물건 등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이는 미국 산업지대의 몰락을 가져왔고, 그 결과로 강한 반이민 분위기가 생겨났다. 특히 트럼프는 멕시코 이민자들을 ‘마약업자’, ‘강간범’이라며 멕시코 국경에 벽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극우 포퓰리즘적인 반이민 정책을 내세워 승리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이민자의 나라’도, ‘기회의 땅’도, ‘자유의 땅’도 아니다.

관용. 로마 등 역사상 존재했던 제국에 대한 세계적 전문가인 에이미 추아가 <제국의 미래>에서 제국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주목한 것이다. 관용(인종, 종교 등 이질적인 개인이나 집단이 공존하면서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유)이 세계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을 모으고 그 덕으로 이들 국가가 세계의 제국이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역사에 기초해 추아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미국 쇠락의 원인을 ‘관용의 상실’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트럼프주의로 상징되는 미국에서 관용의 상실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 아니고 ‘쇠락하는 강대국’에 불과하다는 방증이다.

‘돌아선 자유의 여신’은 미국의 현주소

미국 이민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대부>에 등장하는 엘리스섬이다. 과거에는 이민자들이 배를 타고 미국에 입국했고, 이민자들이 대부분 유럽에서 왔기 때문에 19세기 말부터 엘리스섬은 이민자들의 미국 입국 관문이었다. 엘리스섬의 이민국은 항공기의 발달로 공항을 통한 입국이 늘어나면서 1954년에 문을 닫았다. 1892년부터 1954년까지 약 60년 동안 미국 이민자 중 70%인 1200만명이 이 섬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왔다.

엘리스섬은 이제 미국의 이민사와 관련된 자료를 모아놓은 ‘국립이민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뉴욕과 뉴저지를 가르는 어퍼만의 서쪽 끝, 즉 뉴욕의 서남쪽에 있는 엘리스섬에 가기 위해서는 뉴욕의 배터리 공원이나 뉴저지의 리버티 주립 공원에서 페리를 타야 한다. 나는 뉴욕의 교통체증을 피하고자 리버티 주립 공원에서 들어가기로 했다.

리버티 주립 공원에 도착하니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마라톤대회로 도로를 봉쇄한 것이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도로 봉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먼 길을 돌아 뉴욕 배터리 공원으로 가서 거기에서 페리를 타는 것이다. 둘 다 반나절 이상을 포기해야 한다. 고민하다가, 이어지는 일정을 고려해 박물관 방문은 포기하기로 했다.

애석한 마음으로 공원을 떠나려는데 공원에 설치해 놓은 여러 개의 성조기 사이로 자유의 여신상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를 보는 순간, 나는 무릎을 치고 차 밖으로 뛰어나갔다. 성조기 사이로 돌아선 뒷모습의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전통인 관용과 개방성, 자유, 포용을 외면하고 돌아선 미국의 현재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돌아선 자유의 여신’, 아니 ‘트럼프가 돌려세운 자유의 여신’은 슬프지만 미국의 현주소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