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카페들

2025-12-05

요즘 우리 팀은 산업별 전문가를 인터뷰한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영화, 화장품, 라면, 조선업. 최근에는 15년 경력의 카페 사장을 만나 커피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커피 시장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카페는 시작하기 전이 제일 좋아요. 요트랑 똑같아요. 사기 전이 제일 좋아”라고 말했다. 그에게 ‘카페의 장점도 말해달라’고 요청하자 “내가 여기서 커피 시장 좋다고 하면 악플이 달린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얼마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지 새삼 실감했다. 골목골목에 하도 많아서 ‘바퀴베네’라는 별명까지 있었던 카페베네, 24시간 영업해서 좋았던 탐앤탐스, 두툼한 허니브레드를 먹으러 갔던 엔제리너스도 예전만큼 보이지 않는다. 한때는 스타벅스에 대적했던 커피빈도 요즘은 좀처럼 볼 수가 없다. 그 자리는 어느새 메가MGC커피, 컴포즈커피, 빽다방 같은 저가 커피 브랜드가 대체했다.

그리고 이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대부분 2000년대에 처음 생겼다. 엔제리너스 2000년, 이디야 2001년, 투썸플레이스 2002년, 탐앤탐스 2004년, 할리스커피 2005년, 요거프레소 2007년, 카페베네 2008년. 커피빈이나 파스쿠찌 같은 해외 프랜차이즈가 한국에 1호점을 낸 것도 2000년대였다. 2010년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매장이 2000개를 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2011년이 되자 언론에서는 이미 ‘커피 공화국’이라는 수식어를 쓰기 시작했다. 도대체 2000년대에 한국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커피를 이토록 사랑하게 된 걸까?

‘2000년대에 한국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많이 생긴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자 15년차 카페 사장은 뜻밖에도 외환위기를 언급했다. 그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정말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잖아요. 갑자기 자영업자가 넘쳐나면서 카페 창업이 자연스럽게 늘었고, 그 수요에 맞춰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많이 생긴 거죠”라고 답했다.

전국에 카페가 많아진 원인이 한국인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대한 집착이나, 1999년 한국에 들어온 스타벅스의 성공 때문이라고만 짐작했던 나로서는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 많은 프랜차이즈 카페가 온전한 자의가 아니라 국가적 경제위기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생겨난 것이라니 마음이 무거웠다. 한때는 유행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카페들이 실직이라는 위기를 겪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흔적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전국의 카페 수는 10만개가 넘어서 이제 편의점보다 많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집 근처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 하나가 문을 닫았다. 자꾸자꾸 망하면서 자꾸자꾸 생기는 이 기묘한 풍경이 늘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인터뷰 후에 카페를 다르게 보게 됐다. 한국의 퇴직자들은 여전히 자영업으로 내몰리고 있는 걸까. 간판이 달렸던 자국만 허전하게 남아 있는 카페를 보니 씁쓸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