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지하수, 노후 해안 도시 인프라에 시한폭탄

2025-11-16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기후변화로 인한 지하수 상승이 해안 도시의 노후 인프라를 조용히 갉아먹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그동안 해수면 상승과 침수 같은 ‘눈에 보이는’ 위험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과돼온 지하수 변화가 도로·하수도·건물 기초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미국 로드아일랜드대학교(URI) 지구과학부 크리스토퍼 루소니엘로(Christopher Russoniello) 조교수 연구팀은 최근 학술지 네이처 시티즈(Nature Cities)에 기고한 논평 「해안 도시 인프라에 대한 보이지 않는 지하수 위협」에서 “해안 도시 인프라가 직면한 세 가지 핵심 위험요인으로 △수위 상승 △지하수 염분화 △인공·기후 요인이 결합된 복합 지하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요인은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훨씬 더 촘촘한 모니터링과 대응 전략이 필요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영향을 받는 인프라는 도로와 하수도, 정화(처리) 시스템, 매립가스 및 전선, 건물 기초 등 도시 전반에 걸쳐 있다. 특히 매립된 파이프와 탱크는 해수 침투로 인한 부식에 취약해, 시간이 지날수록 누수·파손 등 2차 피해를 키울 수 있다.

루소니엘로는 “지하수가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지표면 홍수와 도시 공동체가 직면한 다른 위험에 훨씬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이제서야 이해하고 있다”며, 기존 연구가 “로드아일랜드 남부 해안처럼 보다 농촌적인 지역의 정화 시스템이나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주로 초점을 맞춰왔다”고 짚었다. 반면 해안 도시 내부에서 진행되는 지하수 변화와 인프라 취약성은 연구와 정책 모두에서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 있었다는 문제의식이다.

연구팀은 “해안 도시에서 지하수 상승과 염분화가 매립된 인프라를 손상시키고, 폐수 시스템 기능을 떨어뜨리며, 지표 배수를 어렵게 하고, 지하수를 음용에 부적합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지하 변화가 장기적으로는 상·하수도, 도로, 건물 안전, 상수원 보호까지 연쇄적으로 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루소니엘로는 현재 동료 연구진과 함께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EPSCoR 보조금을 받아 로드아일랜드주 워렌(Warren) 마을에서 홍수와 지하수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델라웨어주 연구자들도 함께 참여한다.

연구팀은 워렌 사례에 주목한다. 다른 두 주의 연구 지역과 달리, 워렌은 상대적으로 도시화된 지역으로 지하수나 정화 시스템에 직접 의존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연구진은 “이 때문에 기후 관련 지하수 위험이 인프라에 실제 피해를 주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 존재 자체가 간과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완벽한 예’”라고 평가했다. 즉, 지하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위험이 본격적인 손상이나 침수·붕괴 같은 가시적 피해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정책·예산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진은 사회과학자, 지하수 전문가, 엔지니어들이 함께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주민들의 우려와 우선순위를 이해하고, 실제로 적용 가능한 적응 방식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고 있다.

연구진은 해안 도시의 지하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 해법도 제시했다. 위험 지역에는 부식 방지 파이프나 콘크리트 보강재를 적극 도입하고, 지하 배수 및 탈수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또 지하수 상승과 염분화를 조절하기 위한 펌핑 웰(양수정)의 배치와 운전 일정도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뒷받침할 기술로는 지구물리 탐사, 전기전도도(EC)·수압 센서가 장착된 다단계 관측정 등을 활용해 지하수 수위와 염분 변화의 공간·시간적 패턴을 모니터링하는 방법이 꼽혔다. 이 같은 데이터에 기반해 “기후가 변하고 해수면이 계속 상승하는 상황에서 노후 도시 인프라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행동을 촉구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루소니엘로는 말했다.

연구진은 궁극적으로 자연 기반 혹은 ‘경공학적’(low-engineering) 해법을 포함한 다양한 적응 전략이 최신 설계기준·도시계획 지침·건축·토목 코드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도시계획, 사회과학, 환경과학, 토목공학, 재료공학, 해안과학, 수문지질학을 아우르는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을 구축해 이해·예측·예방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이지 않는 지하수”를 도시 인프라 정책의 핵심 변수로 끌어올리지 않는다면, 해안 도시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발밑부터 무너지는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연구진의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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