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해를 넘겨 내년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분쟁의 배경에는 고(故) 임성기 창업주가 남긴 재산에 대한 상속세가 자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는 수년째 상속세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계에서 종종 상속세로 인해 오너 간 다툼이 일어나곤 하지만 제약업계에서 유독 많은 잡음이 들려온다. 최근 제약바이오업계가 창업자의 시대에서 2세대, 3세대로 승계 작업이 이뤄지면서 상속세가 중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 특성상 신약개발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오너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꾸준한 투자를 하는 것이 필요한데 상속세 문제로 승계를 포기하거나 다른 기업에 넘기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본지는 매주 목요일 제약바이오 업계가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과 각 기업들의 상속세 재원 마련 계획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FETV=강성기 기자] 한국은 상속세 부담이 큰 국가로 세계에서 손가락으로 꼽는다. 과세표준이 30억원을 넘길 경우 적용되는 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여기에다 기업 경영권을 물려받을 경우, 20% 할증이 적용돼 세율이 60%로 높아져서 실제 세율은 OECD 최고 수준이다. 반면 OECD 회원국은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최고세율을 인하하면서 평균 상속세 최고세율이 26%에 그친다. 이에 재계에선 우린나라의 상속세율이 ‘징벌적’이라고 호소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세 비중이 2021년 기준 0.7%로 미국(0.1%)과 OECD 평균(0.2%)보다 훨씬 높다. 총 조세 대비 상속세 비중도 2.4%로 미국(0.5%)의 5배, OECD 평균(0.4%)의 6배에 달한다.
상속세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견·중소기업에도 큰 부담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22년 업력 10년 이상의 중소기업 600개사를 대상으로 가업승계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76.3%가 가업승계 과정에서 예상되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조세 부담’을 들었다.
높은 상속세율은 기업의 투자·고용 확대에 악영향을 주고 장수기업으로의 성장도 가로막는다. 경제 역동성을 높이고 조세체계를 합리화하기 위해 상속세 부담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난 11일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이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와 가진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기업 승계 관련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조세부담을 지적하며 이로 인해 기업의 매각 · 폐업을 고려하게 된다고 호소했다.
제약사도 상속세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너 2~3세가 경영 전반에 나서면서 상속세 문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제약사의 경우 3년간 매출액이 5000억원 미만이면 가업 승계로 상속세가 면제되지만 웬만한 중견 제약사면 이 기준치를 넘어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비상자사가 상장사를 지배하게하고 후계자를 최대주주로 만드는 방식으로 가업승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못하다. 제약업계는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매년 막대한 R&D(연구개발)비를 투자해야 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교체되는 전문경영인은 적합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오너의 공격적인 리더십이 있어야지만 혁신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약사만 상속세를 감면해주거나 면제해줄 수는 없다.
상속세 개편은 재계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정부는 지난 7월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행 ‘과세표준 30억원 초과시 세율 50%’에서 ‘10억원 초과 시 세율 40%’를 적용하는 내년도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최대주주에 대한 과도한 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20% 할증해 60%의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방식도 폐지키로 했다.
그러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수 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에서 ‘부자감세’라며 반대하고 있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기까지 가시밭길이 예고된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지분을 매각하면 성장 동력 저하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면서 “세계적인 제약사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상속세를 글로벌 기준치에 맞게 손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