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끝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5’의 화두는 인공지능(AI)이었다. 올해 슬로건은 ‘몰입(DIVE IN)’이었는데, AI를 통해 연결하고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새 가능성을 찾아내 몰입하자(CONNECT, SOLVE, DISCOVER, DIVE IN)는 의미이다. 지난해까지 AI 신기술 경쟁이 펼쳐졌던 CES는 올해를 계기로 AI 응용의 무대가 됐다.
CES에 AI가 본격 등장한 것은 2017년이었다. AI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이듬해였다. 이후 10년간 AI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올해 CES는 로봇과 드론, 모빌리티, 가전, 헬스케어 등 모든 영역에서 AI 관련 전시물이 50% 이상 늘었다. 안마기에 이르기까지 AI 빠진 기술은 의미가 없을 정도가 됐다.
‘마인크래프트’는 블록을 쌓아 건물을 짓고, 자원을 채취하고, 세계를 탐험하는 게임이다. 미국의 AI 스타트업 알테라(Altera)가 최근 챗GPT 기반의 AI 에이전트를 이 게임에 투입했다. AI는 자율적으로 건축, 농업, 경비 등의 역할을 나누어 맡았다. 공동체를 운영할 법과 세금 제도를 논의하고, 종교를 퍼뜨렸다. 사람들이 해온 것과 다르지 않았다.
현생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는 30만년 전 지구에 나타났다. 수렵·채취에서 농작물 재배로 전환한 농업혁명은 불과 1만년 전이었다. 1700년대 중반 증기기관 발명으로 인류는 산업혁명과 함께 기계화 시대를 열었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인터넷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마인크래프트의 AI는 인류가 30만년에 걸쳐 이뤄낸 역사를 불과 몇시간 만에 뚝딱 해낸다.
AI는 단순히 기술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분야를 변화시킨다. 공상과학 영화의 미래 기술로 여겼던 자율주행차는 최근 테스트 주행이 활발하다. 딥러닝으로 대규모 데이터를 수집해 복잡한 상황에 대처함으로써 운전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다.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을 통한 암 진단은 AI의 정확도가 인간보다 더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시장 데이터를 분석해 금융 소비자별 상황에 맞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
언론 기사도 AI가 쓴다. 주식시장 동향을 알리는 경제기사, 경기 결과를 담은 스포츠기사 등은 AI 작성이 흔해졌다. 적절한 기준을 정해주면 주장이 들어간 AI 칼럼도 가능하다고 한다. 작곡, 소설, 그림 등 사람의 고유 영역으로 여겼던 예술과 창작 분야에서도 AI가 등장했다. 학습 속도와 이해도를 파악해 학생에게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는 ‘AI 튜터’ 활용도 늘어난다.
호주 미래학자 마크 매크린들은 올해부터 2039년 사이 태어난 세대를 ‘베타 세대’로 부르자고 했다. 일상에 AI가 완전히 스며들어 가상과 현실이 융합한 세상을 경험하는 세대라고 한다. AI가 일상화한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생활이 한결 편리해진 인류가 번영을 누릴 것이라고 낙관만 할 수 있을까.
자원 채굴과 남용을 가속화해 지구를 황폐화하고, 극소수 부유층에 부를 집중시켜 사회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라는 AI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AI 연구자 케이트 크로퍼드는
정보라 작가의 <밤이 오면 우리는>은 로봇이 지배하는 미래를 그린 소설이다. 로봇은 지구의 안전을 위해 인간을 사냥한다. ‘인류라는 종이 살아남아 활동을 계속하는 한 행성의 모든 다른 생명체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종을 위한 최선의 안전장치는 인류 문명의 종말’이라고 판단했다. AI가 인간보다 훨씬 똑똑하게 생각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인류는 전쟁으로 서로를 죽이고,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지구를 마구 파헤치고 있다. 인류가 초래할 암울한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