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잘 때리는 코스를 무조건 막는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문성민(현대캐피탈)이 모처럼 코트에서 활짝 웃었다. 지난 3일 남자배구 1·2위 현대캐피탈-대한항공전에 펼쳐진 인천 계양체육관. 먼저 두 세트를 따내고 리드하던 현대캐피탈이 3세트를 내주며 흔들렸다. 주요 공격 옵션인 덩신펑이 좀처럼 경기력을 찾지 못하면서 추격 흐름을 번번이 살리지 못했다.
필립 블랑 감독은 17-21에서 신펑을 빼고 문성민을 넣었다. 어찌 보면, 5세트를 대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는 교체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현대캐피탈이 반전의 흐름을 탔다. 18-21에서는 문성민이 단독 블로킹으로 대한항공 정한용의 퀵오픈을 가로막은게 결정적이었다. 기세가 살아난 현대캐피탈은 대한항공을 21점에 묶어둔채 23점까지 뽑으며 승리를 예약했다.
현대캐피탈의 황금기를 이끈 레전드인 문성민은 이제 전성기를 지나 윔업존을 지키는 시간이 많다. 이날 블로킹은 개막 후 11경기 만에 나온 문성민의 시즌 첫 득점이었다. 문성민은 이번 시즌 지휘봉을 잡은 블랑 감독 체제에서 출전 기회 자체가 더 줄었다. 하지만 이날 대한항공과 빅매치에서 단 하나의 득점으로 베테랑의 관록을 증명했다.
문성민은 경기 뒤 “상대편 아웃사이드히터의 득점이 많았고, 우리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쪽이 아니라 반대편으로 공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상대가 잘 때리는 코스는 무조건 막는다는 생각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주전이 아닌 백업으로 경기를 준비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원포인트 블로커로 코트에 설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며 “짧은 시간이라도 들어갈 때는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뛴다”고 했다. 그러면서 “훈련 때도 A팀의 퀄리티 있는 훈련을 위해 상대팀으로 더 집중력있게 훈련하고 있다”며 경기 감각과 준비 상태에는 자신감을 보였다.
블랑 감독은 문성민에 대해 “프로 의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선수”라고 했다. 문성민을 투입한 상황에 대해서는 “블로킹 강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문성민이 훈련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며 만족스런 미소를 보였다.
‘문성민의 후계자’라는 기대 속에 팀의 토종 에이스로 자리잡은 허수봉은 “성민이 형은 지금도 팀의 에이스다. 코트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팀에 힘이 된다. 분위기를 바꿔주시려고 파이팅도 더 해준다”며 “그 블로킹으로 우리 분위기가 더 타올랐다”고 설명했다.
현대캐피탈에서 오랜 시간 주장으로도 팀을 이끈 바 있는 문성민은 자신보다 팀에 더 집중한다. 백업이라는 위치에서도 팀이 필요한 상황에서 제 몫을 해내겠다는 각오다. 문성민은 “몸상태는 좋다. 새로운 감독님과 단단해진 선수들, 그리고 어린 선수들까지 실력적으로 많이 늘면서 좋은 분위기 속에서 훈련하며 시즌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며 “나도 팀에 녹아들어 팀이 더 단단해질 수 있게 노력할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