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단가(短歌)>는 느리거나 빠르지도 않아, 긴소리를 하기 전, 목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적절한 노래다. 심리적, 신체적 조정과 나아가 고수(鼓手)와의 호흡, 객석의 호응과 분위기 조절을 위해 부르는데, 중심 내용은 자연 풍경이나 인생의 덧없는 삶을 노래한다. 그리고 맺는 부분은 놀아보자’, ‘놀고 가자’ 등으로 현실을 즐기며 살아가자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죽장망혜>라는 단가는 세상의 모든 영욕 다 내려놓고, 짚신과 지팡이, 물병 하나, 허리에 차고 이름난 강산(江山)의 풍경을 찾아다니며 옛 고사들을 떠올리는 노래인데, 시작 부분의 노랫말이 매우 친숙하다.
“죽장망혜단표자(竹杖芒鞋單瓢子)로 천리강산 들어가니,
폭포도 장히 좋다마는 여산(廬山)이 여기로다.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은 엣말 삼아 들었더니,
의시은하낙구천(疑是銀河落九天)은 과연 허언(虛言)이 아니로다.
그 물에 유두(流頭)하여 진금(塵襟) 씻은 후로 석경의 좁은 길로
인도한 곳 내려가니, 저익(沮溺)은 밭을 갈고, 사호 선생 바둑을 둔다.
기산(簊山)을 넘어 들어 영수(潁水)로 내려가니,
허유(許由)는 어찌하여 팔 걷고 귀를 씻고,
소부는 무삼 일로 소 삐를 거사렸노. (아래 줄임)

<죽장망혜단표자>에서 죽장(竹杖)이란 대나무로 만든 지팡이, 망혜(芒鞋)는 짚신. 단표자(單瓢子)란 물 담는 표주박이다. 산에 오르기 위해, 간편한 준비물들을 챙겨 산행해 보니, 폭포도 장히 좋고, 중국 강서성에 있는 유명한 여산(廬山)이 바로 여기임을 확인하고 감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에 놀라면서 그 맑은 물로 머리와 마음의 먼지를 씻어 낸 뒤, 좁은 돌길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저익(沮溺), 곧 장저와 걸익이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이나, 바둑 두고 있는 4인의 선비들과 만나는 모습을 보는 듯 표현하고 있다.
특히, 사호(四皓) 선생은 4명의 노인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들은 중국 진(秦)나라 사람들로 세상이 시끄러워졌을 때, 상산(商山)으로 들어가 숨어 살던 사람들이다. 하나같이 검은 머리와 눈썹이 하얗게 변색 되었다고 해서 사호라 부른다.
그 뒤로 이어지는 노랫말, “기산(簊山)을 넘어들어 영수(潁水)로 내려가니, 허유(許由)는 어찌하여 팔 걷고 귀를 씻고, 소부(巢父)는 무삼 일로 소고삐를 거사렸노”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기산은 높은 산 이름이고, 영수는 맑은 강의 이름이다. 이 강물에 허유가 팔을 걷고 귀를 씻는다는 대목이나, 또는 소부가 소의 고삐를 잡아끌고 있는가? 라는 표현에는 매우 의미 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곧, 중국 상고사의 전설적인 임금으로는 요(堯)와 순(舜)을 꼽는다. 이 시대를 <요순(堯舜)시대> 혹은 <태평성대>라고 하는데, 정치가 공평하고 안정되어 있어서 다툼이 없었던 시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허유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의 학식이나 생활 철학이 매우 고고한 인물이어서 임금은 그에게 자기의 임금 자리를 내 줄 테니 맡아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한다. 그런데 허유 선비는 권력과 명예, 재물로써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선비들이 취할 진정한 길이 아니라고 하며 임금의 말이 내 귀가 더러워졌다고 해서 영수에 나가 귀를 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람은 소부였다. 곧 그가 몰고 가던 소가 물을 먹으러 강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허유가 귀를 씻는 모습을 본 소부는 “그 더러운 물은 소에게도 먹일 수 없다”라고 하며 소를 끌고 강 위쪽으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정치로 인해 국민이 극도로 피곤해 있는 한국인들에게 소부나 허유와 같은 순수한 선비들이 전하는 이러한 메시지는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의 꿈같은 이야기는 판소리 <춘향가> 도입 부분에도 나오고 있다. 곧, 이 도령이 방자를 불러 놓고 “내 너의 골 나려온 지 수삼삭이 되얐으나, 놀 만한 경치를 모르니, 어디어디 좋으냐?”라고 물어본다. 이때, 방자는 “공부하신 도련님이 승지는 찾어 뭣허시려오?”라며 거절하지만, 이 도령은 고래의 문장 호걸들이 명승지는 다 구경하고 대문장이 되었다고 강조하면서 천하지제일강산, 쌓인 게 글귀임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다.
“기산 영수 별건곤, 소부, 허유 놀고, 채석강 명월야의 이적선도 놀고, 적벽강 추야월의 소동파도 놀아 있고, 시상리에 오류촌 도연명도 놀고, 상산의 바돌 뒤던 사호 선생도 놀았으니, 내 또한 호협사(豪俠士)라, 동원도리편시춘(東園桃李片時春), 아니 놀고 무엇 헐거나. 잔말 말고 일러라.(이하 줄임)
단가, <죽장망혜>에 나오는 <기산>이나 <영수>, <상산>과 같은 이름난 산(山)이나 강(江)의 이름도 만나게 되고, <소부>,<허유>,<사호>선생, 등등의 낯익은 이름들도 출현하고 있어서 공감이 크다.
이 <죽장망혜>라는 단가의 마지막 구절은
“강산풍월 이러하니 금지할 이 뉘 있으리. 어화 벗님네야,
빈천(貧賤)을 한(恨)치 말고, 자락(自樂)하며 지내보세.”로 맺고 있다.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현실을 한탄하지 말고, 스스로 즐기며 삶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자는 아름다운 노래가 아닌가!.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