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정부가 미국발 관세 현실화로 인한 대외 여건 악화를 공식화한 가운데, 지역별 인쇄·철강 중소기업들은 이미 한계상황에 놓여 있다. 중국산 저가 공세, 원자재 가격 하락, 발주 위축, 고금리 부담까지 겹치며 “기계를 돌릴 이유가 없다”는 절박한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1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4월호에서 “내수 회복 지연과 미국의 관세 부과로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3월까지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뭉뚱그렸던 경기 악화 원인을 이번엔 구체적으로 “미국 상호관세 부과”라고 못 박았다.
이 같은 정부의 공식 판단은 지역 제조업계의 현실을 뒤늦게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인쇄업계 “관세 25%면 미국 수출 전면 중단…내수도 죽어”
경기도에서 쇼핑백·패키지 인쇄를 전문으로 해온 한 인쇄업체는 미국 중소 유통업체와 대형 마트에 종이 쇼핑백을 납품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산 인쇄물에 상호관세 지난 9일(미국 현지시간) 25%를 예고하면서 수출길은 사실상 봉쇄됐다. 다행히 미국 정부가 90일 관세 유예 방침을 밝혔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어 중소기업은 불안해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비닐봉투 대신 종이 쇼핑백 수요가 많아졌지만, 실제로 관세 25%가 현실화되면 더는 미국이 한국산을 선택하지 않을 겁니다. 가격 경쟁력 자체가 무너집니다”
이 업체뿐만 아니라, 카탈로그·브로슈어·제품 안내서 등 기업용 인쇄물을 수출하던 다수 중소 인쇄업체들 역시 계약 취소와 신규 문의 ‘제로’ 현상을 겪고 있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지역 축제, 지자체 홍보물 발주 등 공공 인쇄 수요는 예산 삭감으로 사실상 멈춘 상태다. “예전엔 여의도 벚꽃축제 하나만으로 몇 천 장씩 인쇄했지만, 올해는 발주가 전무합니다. SNS 홍보로 대체되면서 실물 수요 자체가 사라졌습니다”라며 하소연했다.
◇ 철강업계 “후판 가격 떨어져도 수익 없고, 오르면 일감 끊겨”
부산에 위치한 중소 철강업체 역시 똑같은 고민에 시달린다. 이 업체는 후판, 판봉 등의 자재를 가공해 반제품으로 납품하고 있지만, 중국산 저가 공세와 수요 절벽 속에 생산 가동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2023년엔 자재 가격이 너무 내려가 손해 보고 팔았고, 2024년엔 발주 자체가 없었어요. 2025년 들어 후판 가격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가격 오르면 또 발주가 끊깁니다. 일거리가 없어요.”
업계에 따르면 중국산 철강이 미국 관세로 인해 아시아 시장으로 더 유입되면서 국내 철강시장 왜곡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가 최는 후판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등 관세 대책을 내놓은게 맞지만, 이에 따라 가격이 오르면 가격이 높아져 수요는 바로 끊길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 정부도 “하방 압력 증가”…유예기간에도 피해 현실화
기재부는 이번 그린북에서 관세 90일 유예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부 품목(철강, 자동차 등)에 10~25%의 관세가 실제 적용되고 있어, 실질적인 충격은 이미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내 정치 불확실성은 일부 해소됐지만, 미국 관세 부과로 인한 대외 리스크가 경기 전반에 하방 압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진단대로라면 수출 회복은 단기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내수마저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쇄·철강 등 내수 기반 제조업계는 “지금 필요한 건 수출보다는 내수 회복과 금리 인하”라고 입을 모은다.
한편 통계청에서는 지난 9일 '3월 고용통향'을 발표, 지난달 취업자 수가 석 달 연속 10만명대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지만 제조업과 건설업에서는 일자리가 계속 줄었다.
특히 건설업 취업자는 작년 동월보다 18만5천명 급감했다. 11개월 연속 줄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달 감소 폭은 2013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가장 컸다.
제조업 취업자도 작년 동월보다 11만 2천명 줄어 2020년 11월(-11만3천명)이후 4년 4개월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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