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고시' 기출 풀고 과외 받는데…'영유 레벨테스트' 23개뿐?

2025-09-04

5살 자녀를 둔 A씨는 강남 압구정의 한 유명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에 아이를 입학시키기 위해 지난해 9월쯤 아이에게 시간당 15만원에 과외교사를 붙였다. 1대 1 면접 형식의 유치원 레벨테스트(레테)를 앞두고 아이가 낯선 환경에서 대화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집 근처 스터디룸을 빌려 4차례 수업을 받게 했다.

학원은 면접과 함께 상위 5% 학생들만 합격한다는 고난도 지필 시험을 치러야 입학이 가능하다. 수업료와 교재비를 합쳐 매달 2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내야 하지만, 매년 온라인 지원 접수가 순식간에 마감될 만큼 선호도가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A씨는 “입학 후 학원 적응을 위해 구한 과외 선생님도 주변 엄마들의 소개로만 연결이 가능했다”고 전했다.

‘4세 고시’, ‘7세 고시’란 표현이 생겨날 정도로 영유아 대상 영어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고 있다. 4일 교육부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과 함께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전국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 728곳(교습 4시간 이상 반일제)을 조사한 결과 260곳에서 총 384건의 법령 위반사항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법령 위반 사항을 정부 차원에서 전수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 결과 정부와 시·도교육청은 교습정지 14건, 과태료 부과 70건, 벌점·시정 명령 248건, 행정지도 101건 등 총 433건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과태료 처분을 받은 학원 중 15곳은 법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유치원’의 명칭을 사용하다 적발됐다.

레벨테스트를 시행하는 곳은 총 23곳으로 집계됐다. 선발 목적의 시험을 보는 곳은 3곳, 등급 분반 목적의 시험을 치르는 곳은 20곳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11곳), 경기(9곳), 강원 (3곳) 순이었다. 당국은 이들 학원을 선발 방식을 상담이나 추천으로 바꾸라고 행정지도 했다.

교육계 일각에선 적발 수치가 현장에서 체감하는 것에 비해 적다고 생각한다. 레벨테스트 시행 자체는 법령 위반은 아닌 데다, 대부분 학원에서는 상담이나 시범수업 명목으로 치르고 있어 적발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소장은 “불법이 아니어서 학원을 상대로 조사하는 방식으로는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영어유치원의 과도한 레벨테스트가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문제의식도 계속되고 있다. 강남 한 유명 영어유치원의 7세 대상 입학시험 문제를 보면 10개 넘는 영어 문장으로 구성된 지문을 읽고 문항과 답변까지 영어로 된 문제를 1시간 안에 수십여 개 풀어야 한다.

실제로 서울 강남·목동 등 '교육특구'에선 고난도의 레벨테스트를 준비하기 위해 ‘프렙(준비·preperation)학원’과 과외가 성행이다. 강남 한 프렙학원에는 ‘빅10’ 영어유치원 합격 현황을 광고로 내세운다. 온라인엔 ‘7세 고시 기출문제’라며 유명 학원의 문제를 모아 7만원에 판매하거나, 레벨테스트 신청을 대신해준다는 응시 티켓팅 대행업체까지 등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7세 고시 등 조기 사교육에 대해 아동 인권침해라고 지난달 판단했다. 아예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7월 36개월 미만 영유아를 대상으로 국제화 목적의 학습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영어유치원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향적으로 영유아 대상 레벨테스트 막고 사교육 줄일 방안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보다 실효성 있는 관리를 위한 논의가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현재 교육 수요 등을 고려하면 법으로 영어 사교육을 규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의견 수렴과 논의 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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