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에서 새 시즌을 준비 중인 곽빈이 2번째 불펜 투구를 마쳤다. 공 50개를 던졌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48㎞까지 나왔다. 지난겨울 기초군사훈련을 받느라 예년보다 몸 만드는 시간이 짧았는데도 구속이 꽤 올라왔다. 그러나 곽빈은 이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고, 트래킹 데이터를 살피며 꼼꼼하게 피드백을 받았다. 곽빈은 “첫 번째 불펜 피칭보다는 나았는데, 아직은 공을 좀 더 던져야 할 것 같다”면서 “직구가 계속 커터성으로 들어간다. 뭔가 공이 약하게 들어가는 느낌이라 체크를 했다”고 말했다.
곽빈은 지난 시즌 15승으로 삼성 원태인과 공동 다승왕을 차지했다. 외국인 투수들이 줄지어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시즌 내내 로테이션이 흔들렸지만, 곽빈이 홀로 에이스 역할을 하면서 선발진을 지켰다. “감사했지만 외로웠다”는 지난달 말 호주 출국길 소감도 그래서 나왔다. 소년가장처럼 1년을 버텨낸 소회였다.
지난해 곽빈은 명실상부 국내 최고 투수 중 1명으로 우뚝 섰다. 최근 한 유튜브 방송에서 김광현과 양현종은 자신들을 이을 차세대 선발 기수 3명을 꼽으며 곽빈을 공통으로 지목했다. 곽빈은 “정말 감사하면서도 또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 더 잘해서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활약으로 곽빈은 올해 연봉 3억8000만원에 계약했다. 팀 내 비FA 선수 최고 연봉이다. 지난해보다 1억7000만원이 더 올라 인상액도 최고다. 그만큼 책임감은 더 커졌다.
곽빈은 매년 성장하는 투수다. 데뷔해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고 2년을 통으로 재활에만 매달렸지만, 2021년 복귀 시즌 선발 로테이션을 꿰차며 잠재력을 증명했다. 이듬해 규정이닝을 넘겼고, 2023년 선발 12승에 이어 지난시즌 다승왕까지 차지했다. 곽빈은 “묵묵히 내 거 하면서 작년보다 더 좋은 모습 보이는 게 매년 똑같은 목표”라고 했다. ‘더 좋은 모습’이 단순히 성적을 말하는 건 아니다. 한 시즌을 치르면서 불만족스러웠던 부분, 안 좋았던 부분을 개선하고 투수로서 매년 더 발전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올 시즌 목표는 기복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지난 시즌 곽빈은 월별로 성적 편치가 없지 않았다. 5월 평균자책점 1.48로 월간MVP를 차지했지만, 6월 5.91로 흔들렸다. 7월 다시 좋았다가 8월 또 부진했다. 곽빈은 “작년에는 좀 왔다 갔다 하는 게 있었으니까, 그런 게 한 10번 정도 있었다면 올해는 7번 정도로 줄이고 싶다”고 했다. 원하는 걸 단박에 모두 해낸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매년 견실하게 성장하면서, 하나씩 도전 과제를 클리어해가는 게 곽빈의 스타일이다.
시드니 도착 이후 곽빈은 매일 아침 루틴을 반복한다. 일어나자마자 오늘은 어떻게 공을 던질지부터 생각한다. 원하는 투구 감각을 떠올리며 훈련에서도 그런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일종의 자기 암시를 건다. 곽빈은 “그걸 생각하고 안 하고가 정말 작은 차이일 수 있는데, 그 생각을 하지 않고 던지면 안 좋은 버릇이 나오더라”면서 “그래서 더 예민하게 습관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운 날씨 속 훈련하는 것도 고된 일인데, 매일 아침 예민하게 감각을 끌어올리고 집중을 하면 정신적으로도 피로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집중하려고 한다. “지금 피곤해야 시즌 때 편하다”고 곽빈은 이유를 말했다. 프로 입단 7년 차, 지난 세월 동안 그 스스로 터득한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