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창은 공론장이 될 수 없을까

2025-10-09

국제부 생활도 어느덧 1년 5개월차, 업무상 매일 외신을 읽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각 언론사의 댓글 정책이다. 내 담당 지역인 일본의 유력 일간지 아사히신문은 일반 독자가 홈페이지에 댓글을 다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대신 ‘코멘트 플러스’라는 제도를 운용한다. 아사히가 선정한 전문가에 한해 ‘코멘테이터’로 활동할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다.

이달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외국인 규제 강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코멘트가 달렸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들이 데이터도 보이지 않은 채 에피소드 중심으로 외국인에 의한 위협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일본 외무성 주임 분석관을 지낸 작가 사토 마사루의 지적이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보수파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전보장상이 ‘나라 공원에서 사슴을 발로 걷어차는 외국인 관광객이 있더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된 이후다.

아사히는 이 같은 댓글 가운데 기사에 나오지 않는 배경을 설명해주는 댓글에는 ‘해설’, 다른 시각을 보여주면 ‘시점’, 대안 제시엔 ‘제안’이란 라벨을 붙인다. 독자는 마음에 드는 코멘테이터를 구독할 수도 있고, 아사히가 엄선한 코멘트를 뉴스레터 형식으로 받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코멘트가 아사히 기사로 재가공되기도 한다.

뉴욕타임스는 훌륭한 질문을 던지거나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하는 댓글 등을 ‘NYT Picks’라는 섹션에 따로 모으는 것으로 유명하다. ‘From NYT’라고, 독자 질문에 기자가 답변하는 섹션도 있다. 기자가 ‘내 기사는 이런 취지에서 이렇게 썼다’며 첫 댓글을 달아두기도 한다.

기자가 아니어도 뉴스를 소비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다는 사람은 생각보다 없다. 상당수가 제목만 대충 본 뒤 자기 생각을 쓴다. 이재명 대통령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에 ‘띄워준다’고 쓰는 식이다. ⁠짧은 댓글만 그런 게 아니다. 별 근거 없이 기사에 나오는 사람이나 기자, 매체를 욕하는 댓글도 많다. ⁠그런 댓글이 ‘좋아요’를 수백개 받고 네이버 기준 ‘순공감순’ 윗줄에 노출돼 기사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댓글 정책 개선이 없진 않았다. 연예인 설리의 비극적 죽음 이후 주요 포털사이트 모두가 연예 기사 댓글창을 닫았고, ‘다음’은 기사 노출 후 댓글 작성·열람 가능 시간을 한정하는 등 실험적 변화를 도입했다. 혐오 표현, 욕설 등에 대한 필터링도 예전보다는 원활히 이뤄지는 듯하다. 하지만 음모론이나 허튼소리까지 막는 건 아니지 않나. 모욕성 발언이 아니어도 공론장에 해악을 끼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국 철학자 해리 G. 프랭크퍼트가 <개소리에 대하여>에서 겨냥한 현실이다.

아사히나 NYT나, 개별 언론사니까 자체 정책 추진이 수월한 면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포털 ‘야후재팬’도 전문가 코멘테이터 제도를 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눈에 띄는 나쁜 댓글을 막는 데 주력했을 뿐, 기사를 더 잘 읽게 하고 좋은 대화를 이끌어 가는 방법엔 막상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한국식 댓글 문제의 뿌리는 아니었을까. 잘 읽지도 못하는 남의 나라 댓글창을 켜고 해보는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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