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8이닝 무실점했어요?”…원태인의 농담에서 달라진 야구 문화를 보았다

2025-10-30

PO 5차전 5실점 조기강판에도 박수받은 최원태

업셋당한 SSG, 포지션 바꾼 청백전에 팬들 열광

‘탈락=죄인’ 시대 가고 ‘졌잘싸’ 격려하는 문화로

국제대회에서 국가대표팀이 은메달을 따고도 ‘죄송하다’고 고개 숙이던 시절에서 노메달에도 박수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왔듯 야구장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경기에서 패배하면 웃음기도 감춰야 했던 과거에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선수단과 팬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시리즈부터 플레이오프까지 총 11경기를 치른 삼성의 올해 마지막 경기가 대표적이다. 24일 한화와 붙었던 플레이오프 5차전, 삼성 선발 최원태는 3.1이닝 5실점(3자책)한 뒤 조기 강판당했다. 팀이 1-5로 뒤지는 상황에서 마운드를 떠나는 최원태를 향해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내고 최원태를 연호했다.

웃으며 내려가는 최원태를 향해 박진만 삼성 감독도 박수를 보냈다. 삼성 구단 공식 유튜브 영상에는 더그아웃에서 박 감독이 최원태를 찾아가 “고생했어”라며 악수하고 격려하는 장면이 담겼다. 투수 원태인은 관중석을 가리키며 최원태에게 “형님, 8이닝 무실점했어요?”라고 농담을 건네고 포옹했다.

최원태는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6이닝 무실점,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7이닝 1실점 선발승을 따냈다. 5차전에서 3.1이닝 5실점(3자책)으로 무너졌지만, 최원태가 아니었다면 플레이오프 5차전까지 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마음을 선수단과 팬들이 박수에 담아 전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포스트시즌에만 11경기를 치르며 체력이 고갈되고 사실상 정신력으로 버텨온 데 대한 격려이기도 했다.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3패로 삼성에 업셋 당해 탈락한 SSG도 비슷하다.

플레이오프 5차전이 진행될 때 SSG는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팬들과 함께 하는 이벤트 경기를 열었다. 투수와 야수가 포지션을 바꿔 진행한 청백전은 SSG 팬들로 가득 찼다. 최정이 던진 공을 김광현이 치거나, 투수 한두솔이 선제 솔로 홈런을 치고, 포수 조형우가 시속 149㎞짜리 공을 던지는 등 재밌는 장면이 다수 나왔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온라인상 반응이 뜨겁다.

시즌 전까지만 해도 하위권에 머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던 SSG는 그 이상인 정규시즌 3위를 했다. 플레이오프까지 가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팬들은 ‘졌잘싸’라고 박수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벤트 경기를 다녀온 11년 차 야구팬은 스포츠경향에 “선수들과 팬들이 시즌 내내 서로 고생했다고 위로하는 뒤풀이 자리였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3위를 예상한 사람은, 팬 중에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가을에도 조금 더 높이 올라가면 좋았겠지만 이제 내년을 위해 비시즌 열심히 훈련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고 돌을 던지는 건 내가 아는 팬 문화는 아니다”고 했다.

선수들과 마주하는 야구장에서는 훈훈하지만, 그 뒷편에서는 팬심을 명분으로 한 괴롭힘이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선수들은 온라인상에서는 무차별적인 비난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한화 마무리 김서현이 정규시즌 막판 흔들리자 SNS에는 김서현을 향한 심한 비난 댓글이 이어졌다. 김경문 한화 감독이 “야구팬이 많이 늘어나 반갑고 고맙다. 그러나 팬들 반응이 너무 심할 때도 있다. 감독도 선수도 신이 아니다”고 공개적으로 우려하기도 했다. 삼성 외인 타자 르윈 디아즈도 가족을 향한 심각한 SNS 테러를 호소했고, KIA 박찬호는 5명의 누리꾼을 고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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