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에 히말라야 떠난다…한눈 잃은 장인의 강철 멘탈

2025-05-27

100세의 행복

1983년 4월의 어느 날 해 뜨기 전 새벽, 다급하게 서울 강남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은 남성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겨우 한 손을 갖다 댄 오른쪽 눈에선 피가 터져 나왔다. 급하게 나서느라 지갑을 두고 온 탓에 병원에선 접수조차 해주지 않았다. 피를 계속 흘리며 명동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 응급수술을 받아야 했다.

올해 백수(白壽)를 맞은 국가무형문화재 이봉주 유기장이 42년 전 한쪽 눈을 잃은 날 얘기다. “그 시절엔 돈 없으면 병원도 안 받아줬다”며 아찔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방짜유기를 만드는 장인이다. 한쪽 눈을 잃고도 열흘 만에 다시 불 앞에 섰다. 놋쇠를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넣어 찍어내는 대신 망치로 수천 번 때려 유기를 만든다. 그릇도 만들고 징도, 꽹과리도 만든다.

600~700도 넘는 화로 앞 담금질은 지금도 계속한다. 이달 초 경북 문경 방짜유기 공방에서 만난 그는 4㎏짜리 물동이를 가뿐하게 들어옮겼다.

평생 두드린 ‘쇠질’은 유기뿐 아니라 그의 몸도 빛나게 단련시켰다. 신체 나이는 ‘60세’라는 그는 네팔 히말라야로 여행을 떠난다고 자랑했다. 가족과 직원의 걱정을 이기고 히말라야로의 100세 여행을 계획한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

〈100세의 행복〉 두 번째 이야기는 100세 유기 장인(匠人)이 주인공이다. 어떻게 지금까지 몸 쓰는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지, 이러다 죽겠다 싶었던 인생의 고비를 어떤 마음으로 이겨냈는지 강인함의 비결을 들었다.

쇠붙이 맞아 오른 눈 잃었다… 그런데도 “감사” 왜

“내가 인생 얘기하면 사람들이 ‘저놈 미친 소리 한다’며 못 믿겠지만 다 실제 겪은 일이다. 눈이 이렇게 됐어도 원망 같은 건 없었어” 잠시 망치질을 멈춘 그가 원래 없었던 것처럼 감긴 오른쪽 눈을 가리켰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작업장에서 함께 일하던 조수가 망치를 내리친 순간, 쇳덩어리가 이봉주 유기장의 눈으로 날아왔다. 순간 앞이 안 보였다. 동맥이 터져서 피가 쏟아졌다. 눈은 결국 살릴 수 없었다. 안구를 적출해야 했다. 병원을 찾은 가족과 지인들은 놀라 기절초풍했다. 되려 이들에게 뱉은 그의 첫마디가 모두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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