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산업의 지나친 소비와 폐기물 급증은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이라는 두 가지 큰 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쩌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아주 쉽고도 강력한 기후위기 솔루션일 수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날씨를 확인하고 출근길에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에 잠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일 어떤 옷을 입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유일하게 교복을 입던 중학교 시절을 제외하곤 매일 고민거리가 확실하다. 이제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느냐는 단순히 멋을 넘어 그 사람의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이 옷차림을 결정하는 가장 우선 요인은 날씨일 것이다. 그런데 그 날씨가 변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반소매를 찾게 만드는 따뜻한 날이 늘어나게 만들고 갑자기 폭설이 내리거나 한파를 몰고 오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반면 봄, 가을 간절기 때 입던 옷들은 옷장에 갇힌 채 바깥세상 구경할 날이 줄어들고 있다. 분명 기후변화는 사람들의 옷차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직 이것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결국 기후변화는 사람의 선택을 바꾸고 나아가 의류 산업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후변화는 패션 트렌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은 겨울이라 잘 느끼기 힘들지만, 전 지구적으로 기온이 상승하고 특히 여름철 폭염이 심해지며 열을 견디면서도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옷차림이 유행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과 같은 지리적 위치에 있는 지역들은 집중호우의 강도가 심해지며 더 많은 비가 내려 습도가 높아짐에 따라 도시를 한증막으로 바꾸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들어 여름이면 몸에 붙지 않아 바람이 잘 통하는 루즈한 핏의 옷들이 눈에 띄고 있다. 물론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적 요인도 있겠지만 더위에 대응하는 기능으로서 루즈핏이 주목받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밝은 색상의 옷을 착용함으로써 더위를 극복하는 방법도 있다. 평소에 내 칼럼을 열심히 읽은 분들은 이제 다 아시겠지만, 실제 하얀색은 태양에너지를 많이 반사하기 때문에 얼음이나 눈이 있는 지역은 다른 곳에 비해 기온이 낮다. 마찬가지로 흰옷을 착용하면 나 스스로 반사판이 되어 온도를 조금 낮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리해 보면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측면에서 여름에는 밝은색 얇고 펑퍼짐한 루즈핏 옷을 입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슬기로운 기후대응 패션으로서 말이다.
패션 산업, 온실가스 배출 10% 차지
기후변화는 옷차림뿐만 아니라 의류 소재 선택 요인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통기성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유기농 면, 마 같은 자연 소재 섬유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보통 이런 소재들은 통기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가볍고 수분을 잘 흡수해서 요즘같이 극단적인 여름 날씨를 보이는 지역에서 수요가 상승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소재의 변화는 기후변화 대응, 지속 가능성, ESG 등과 맞물려 소비자들의 새로운 구매 패턴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널리 사랑받았던(물론 아직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같은 합성섬유는 통기성이나 땀 흡수율이 떨어져 앞으로 천연 섬유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기후변화로 의류 소재의 수요 변화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기후변화는 의류 원자재 공급망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기후변화는 가뭄, 폭우, 폭설, 폭염 등을 동반하기에 농작물 생산에 악영향을 끼치고 이에 따라 원자재 가격이 오르거나 공급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친환경이라는 좋은 선택을 한 덕에 가격이 오르는 불상사가 발생하면 경제성을 잃을 수 있다. 따라서 패션 산업계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친환경 소재에 대한 공급망을 다각화해야 하며 지속 가능한 새로운 소재 개발에도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패션 산업의 다른 이면을 살펴보려 한다. 환경이라는 큰 어젠다에서 보면 우리가 크게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의류를 생산, 소비, 폐기하는 모든 과정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기후변화가 의류 산업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당연히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의류 산업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준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막대한 양의 석탄을 사용하는 철강, 중화학 산업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의류와 같은 패션 산업 또한 분명히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류를 포함한 패션 산업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절대 적지 않은 숫자이다. 이 수치는 전 세계 항공, 선박 등의 운송수단에서 나오는 양보다 많은 온실가스 배출량이다. 그리고 이 숫자는 최근에 급성장하고 있는 트렌드인 패스트패션(fast fashion)과 크게 연관되어 있다. 패스트패션 또는 스파(SPA: Special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라 불리는 의류 제조업은 햄버거, 피자, 라면 등과 같이 빠르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처럼 최신 유행을 반영하면서 빠르게 생산하는 업종을 말한다.
패스트패션보다는 슬로패션
최신 패션을 싼값에 전 세계에 마구 공급하려는 트렌드는 의류 산업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게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많이 만들기 때문에 너무 많이 버려진다는 점이다. 패스트패션으로 인해 매년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옷의 양은 엄청난 규모에 이른다고 한다. 매년 약 9000만t의 의류가 폐기되고 있다고 추정한다. 이 중 상당수가 한두 번만 입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으며 입지도 않고 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패스트패션이 대량생산에 힘입은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를 촉진하지만, 옷의 수명이 짧아지고 결국 쓰레기가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의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 토양오염, 원자재 낭비, 에너지 낭비가 발생하고 있으며 해가 갈수록 의류 폐기물 처리 비용이 증가하는 비용 상승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의류 폐기물을 개발도상국으로 보내고 있으나 그 지역의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물과 관련된 이슈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면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소진되는 막대한 양의 물이 낭비될 수 있으며, 의류 염색 과정에서 염료가 하수로 유입되어 수질오염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가정에도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서 발매된 옷 가짓수가 적어도 하나는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패스트패션 제품을 사는 것이 나쁘다거나 만드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수요와 공급에 맞춰 필요한 양만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제는 패션 산업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의류 기업들도 이 부분에 대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앞다퉈 지속 가능성 라인을 출시한다든지, 친환경 섬유를 도입하거나 재활용 소재를 적극 활용하는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그렇게 큰 호응은 얻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그린워싱의 사례로 치부되기도 한다. 일부 제품을 과도하게 홍보하면서 마치 해당 기업의 제품이 모두 친환경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고 빠르게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이기에 기업의 이런 속임수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친환경 의류에 대한 수요는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이제는 패스트패션이 아닌 ‘슬로패션’으로 과도한 생산을 지양하고 내구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환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생존 방식이다.
누구나 아침 출근길에 멋진 옷을 입고 스타일리시하게 집을 나서고 싶을 것이다. 지금 어쩌면 많은 분이 여전히 저렴하게 옷을 구매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패션 산업의 지나친 소비와 폐기물의 급증은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이라는 두 가지 큰 문제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 그래도 바꾸어 말하면 결국 오늘 나의 패션이 지금 우리가 경험 중인 기후변화를 바꾸는 데도 이바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어쩌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아주 쉽고도 강력한 기후위기 솔루션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