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우렁이의 역습…미나리밭까지 초토화

2024-09-14

전남 일대에서 벼 어린모를 갉아 먹는 왕우렁이 피해(본지 7월1일자 8면 보도)가 미나리밭으로까지 확산되면서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미나리 주산지인 전남 나주시 노안면에선 수로를 타고 유입된 왕우렁이가 미나리 시설하우스에 침범해 미나리를 갉아 먹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 지역 50여농가가 200㏊ 규모로 노지와 시설하우스에서 미나리를 재배하는데, 이달초 기준 15농가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최근 찾은 미나리 시설하우스 내 밭은 군데군데가 머리카락이 쥐어뜯긴 것처럼 비어 있었다. 가장자리엔 분홍빛 왕우렁이 알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노명학씨(68·노안면 영평리)는 “여름 출하용으로 미나리를 파종한 지 한달이 지났는데도 잘 자라지 않아 이상하게 여겼는데, 어느새 밭이 왕우렁이로 가득 찬 것을 발견했다”며 “인근에 있는 친환경벼 재배 논에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한숨을 쉬었다.

방제제가 일정 효과를 내고 있지만, 왕우렁이가 빠른 속도로 증식하고 있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노씨는 “외국인 근로자 2∼3명을 동원해 한차례 수거했지만 개체수가 무섭게 불어나고 있어 두 손을 들었다”며 “8월말~9월초에 출하할 예정이었던 시설하우스 7동(9917㎡·3000평)의 수확을 포기하고 완전히 갈아엎은 뒤 겨울미나리 파종을 새로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겨울미나리 파종이 시작된 노지 상황이다. 이 지역 농가들은 벼 수확 후 이모작으로 미나리를 심어 추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벼 수확을 마친 논 곳곳에서 이미 왕우렁이가 발견되고 있어 농가들은 광범위한 피해 발생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9만9173㎡(3만평) 규모로 겨울미나리를 재배하는 김봉옥 나주 미나리생산자연합회장(73)은 “로터리 작업 후에 논바닥에 콩알만 한 왕우렁이들이 깔려 있는데, 시설하우스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며 “3∼4년 전에도 왕우렁이 때문에 출하를 일부 포기했던 전례가 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고 토로했다.

김종성 나주 노안농협 조합장은 “올해 이상기후로 인해 왕우렁이 피해가 작목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며 “9월 중순부터 겨울 미나리 파종 작업이 본격화되는데 벌써부터 파열음이 나고 있어 올해 생산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나주시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여름미나리를 출하하는 시설하우스 농가에서 피해가 확인됨에 따라 재배농가들에게 유기농자재 살포와 배수구망 설치 등 대책을 권장하고 있다”며 “올겨울도 평년보다 따뜻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겨울미나리 작황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주=이시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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