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표의 모눈노트] 모교도 몰라볼 판인데⋯, 또 바꾼다고?

2025-06-17

학생 모집난 속 이미지 쇄신 전략

계속되는 교명 변경, 정체성 혼란

특성화고 ‘이름 바꾸기’ 언제까지

‘새 이름을 지어주세요.’ 전북지역 모 특성화고는 지난달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교명을 공모했다. ‘전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전문 특성화 학교로 발돋움하기 위해서’가 교명 변경의 이유다. 이 학교는 학교운영위원회 심의와 조례 개정 등 관련 절차를 거쳐 내년부터 새 이름을 사용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이 학교는 1951년 변산수산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뒤 줄포수산고, 줄포고, 줄포공고, 줄포자동차공고를 거쳐 5번째 개명, 6번째 교명을 갖게 된다.

이처럼 수시로 교명을 바꿔온 학교가 적지 않다. 전북지역의 경우 4번 이상 교명을 바꾼 학교가 8곳에 이른다. 대부분 특성화 고교다. 올해도 고창 영선고가 전북인공지능고, 전북하이텍고등학교가 수소에너지고등학교로 각각 변신했다. 삼례고로 개교한 수소에너지고는 삼례종합고, 삼례공고를 거쳐 2020년 전북하이텍고로 개명한 뒤, 불과 5년 만에 다시 새 이름을 달았다. 이번에는 교명에서 지역을 유추할 수도 없어 더 생소해졌다.

이 정도면 동문들이 자신의 모교도 못 알아볼 판이다. 졸업 후에 교명이 4~5번씩이나 바뀌었으니 모교를 알아보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다. 수차례 개명 후 다시 첫 교명으로의 복귀를 추진하는 학교도 있다. 전주여자상업고에서 전주영상미디어고, 전주상업정보고로 이름을 바꾼 이 학교는 최근 총동창회와 함께 전주여상으로의 교명 복원을 추진해 관심을 모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개명(改名) 열풍이 불면서 어렵게만 여겼던 이름 바꾸기가 ‘흔한 일’이 돼버렸다. 사람은 물론, 회사와 아파트, 그리고 학교까지 속속 이름 바꾸기에 동참했다. 표면상으로 그럴싸한 이유와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뻔하다. ‘이미지 세탁’이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까지도 그 이름을 수시로 바꾸는 판에 교명 변경이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신입생 모집난으로 존폐 위기에 몰린 지방대학에서 시작된 교명 변경 열풍이 특성화 고교로까지 번졌다.

상당수 학교는 기존 체제로는 반복되는 신입생 모집난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AI·수소 등 첨단산업 분야나 취업 유망 분야로 학과를 개편하고, 교명을 바꿔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생존 위기 극복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일면 안타깝다. 그런가 하면 기존 체제에 큰 변화가 없는데도 이미지 쇄신을 내세워 새 교명을 채택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산업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현장 맞춤형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학과 개편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위기의 특성화고가 선택한 이같은 자구책은 의도한 성과로 이어졌을까? 그랬다면 4번, 5번씩이나 연속해서, 그리고 이름을 바꾼지 5년 만에 다시 교명을 바꾸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성급하게 이름부터 바꿀 일은 아니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자산이다. 그래서 보통은 교명에서 그 학교의 특성과 함께 지역정서까지 유추할 수 있다. 교명 변경에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첨단 산업 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기에 편승해 기본 토대도 갖추지 못한 채 성급하게 간판부터 바꾸고 새 얼굴 내밀기에 치중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자칫 정체성을 잃고 표류하다가 또 간판을 바꿔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고심 끝에 학교의 이정표를 새로 정했다면 당연히 해당 분야 교육역량 강화 노력이 우선이다. 지금의 특성화고 위기는 학교 차원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구조적 문제에 더 큰 원인이 있다. 그래도 다방면에서의 치열한 자구 노력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개명이 능사는 아니다. ‘바꾸고, 또 바꾸고…’ 언제까지 이럴텐가.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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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표 kimjp@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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