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격한 학풍으로 유명한 서강대가 최근 학점 부여 기준을 크게 완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기준을 유지할 경우 타 대학과의 취업·진학 경쟁에서 뒤처질 수 밖에 없다는 안팎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학점 풍년’ 현상이 대학가 전반에 확산하면서 학생들은 환호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학점의 공신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29일 대학가에 따르면 서강대는 다가오는 2학기부터 상대평가 강의의 A학점 최대비율을 30%에서 40%로 늘리기로 했다. A학점과 B학점 합산 비율 역시 기존 최대 70%에서 80%로 늘어난다. 아울러 교양수업 중 일부에 한해선 A학점 비율에 제한이 없는 절대평가를 도입한다.
서강대는 학사관리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지정좌석제를 실시하고 결석 허용일수가 타 대학보다 현저히 적어 ‘서강고등학교’라는 별명까지 있을 정도다. 이같은 전통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23년 2학기 기준 서강대 재학생의 A학점 비율은 39.6%로 서울 주요 대학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는 50%대, 한양대·중앙대·경희대도 40%대인 것과 대조된다.
서강대가 변화를 수용한 건 재학생들의 요구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대학가에 성적평가 관련 제도 완화 바람이 불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다. 취득한 성적을 학생 스스로 포기할 수 있도록 하는 ‘학점포기제’의 부활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려대는 지난해 1학기부터 모든 과목을 6학점까지 포기할 수 있도록 학점포기제를 확대 개편했다. 이전에는 완전 폐강된 과목에 한해서만 포기할 수 있었다. 한양대는 올해, 숭실대는 2021년에 각각 제도를 재도입·신설했다. 이외에도 연세대는 지난해 2학기부터 재수강 가능 횟수를 재학 기간 중 최대 4회에서 6회로 늘렸고, 명지대와 홍익대는 각각 지난해 1학기, 올해 1학기부터 A학점 최대비율을 30%에서 40%로 확대했다.
재학생들은 대체로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국어국문학과 재학생 정 모(23) 씨는 “서강대는 B가 평균이라면 타 대학 지인들은 A가 기본이라 억울했다”며 “이제 학점관리에 써야 했던 시간을 취업·면접 스터디 등 더 생산적인 일에 쓸 수 있을 것 같아 좋다”고 했다. 기계공학과 재학생 박 모(24) 씨는 “기업들이 예전만큼 학점을 안 본다곤 하나 공기업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을 준비할 경우엔 여전히 중요한 만큼 학교의 결정이 매우 반갑다”고 했다.
다른 학교에서도 성적평가 기준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학점포기제 도입을 위해 대학 측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외대에선 총학생회가 학점포기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되기도 했다. 불경기 속 취업난이 심화하고 있는 데다가 문과 계열에선 로스쿨 열풍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점은 토익·법학적성시험(LEET) 점수와 함께 로스쿨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정량적 요소로 꼽힌다.
대학들은 고민이 크다. 당장은 좋아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학점의 공신력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학점 인플레’ 논란이 이어지자 고려대 로스쿨은 지난 2024학년도 입시에서 학점의 실질 반영비율을 42.29%에서 21.3%으로 대폭 낮췄다. 한 대학교 교무처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학생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를 많이 손질했음에도 학점포기제 등 추가 요구가 끊이질 않는 상황”이라며 “학점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는 데다가 교수들의 반발도 매우 커 학교 입장에서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