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고 싶어도 못 벗어나…애증의 대학로” [오픈런 공연②]

2025-01-07

코로나19 이후 대학로 여전히 불황...오픈런 설 자리 잃어

"높아지는 임대료, 오픈런 팀에겐 치명적 리스크로"

“오픈런을 ‘장기공연’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죠.”

일각에선 오픈런(Opne Run)의 의미를 ‘장기 공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오픈런은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 종료 시점을 정하지 않고 공연하는 것을 뜻한다. 즉 종료 시점을 미리 정해두는 ‘리미티드런’(Limited Run)과 반대의 개념이다. 흥행이 될 때는 장기로 공연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공연을 끝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연의 본고장인 브로드웨이가 대표적이다. 기본적으로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관광객이 유입되면서 탄탄한 수요 기반이 형성되는 지역이라 오픈런 시스템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제작에 있어 ‘규모의 경제’와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의 대학로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로도 ‘한국의 브로드웨이’를 표방하며 공연의 메카로 자리매김을 해왔다. 2023년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공연 건수 기준 2023년 서울에서 열린 공연은 총 9404건으로, 전 지역(20,404건)의 약 46%에 해당하는 공연이 서울에서 진행됐다. 특히 ‘대학로’에만 한정하더라도 1,217건으로 약 6%에 달한다.

코로나19 이후 조금 회복한 수치이지만, 업계에선 “대학로는 여전히 불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중극장, 대극장 규모의 공연에서 매체를 통해 인지도를 쌓은 배우를 섭외하면서 특정 공연에 한해 티켓예매수와 티켓판매액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지만, 소극장은 여전히 불황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현재 140여개의 소극장이 있지만, 수익성이 확실한 단기 공연 위주로 임대를 진행하다 보니 과거 대학로를 주름잡던 오픈런 공연은 더더욱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한 극단 관계자는 “과거처럼 애초에 오픈런을 기획하긴 힘든 상황이다. 관객 수요가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비싼 임대료, 인건비 등의 리스크를 안고 시작하는 제작사가 얼마나 되겠냐”며 “사실상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몇몇 스테디셀러 외엔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도 오픈런이라는 공연의 특성상 ‘시장성 확보’ 문제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규모의 경제’와도 맞닿은 이야기다. “서울 외의 지역에서 투어 공연도 해보고 대학로가 아닌 곳에서 오픈런을 기획해 보려고 시장 조사를 해보기도 했다”는 한 공연 기획자는 결국 시즌 공연으로 방향을 돌렸다고 고백했다.

그는 “지역에서 공연했을 때 반응이 좋아서 오픈런으로 시도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작품성과 별개로 시장성이 없는 곳에 공연을 올리기엔 무리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 있었다. 장기로 임대할 수 있는 곳이 없어 결국 단기 임대로 대학로에 들어갈 생각이다. 벗어나고 싶어도 대학로를 벗어날 수가 없다. 한때 연극의 메카라고 불렸지만, 이젠 정말 ‘애증의 대학로’가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오픈런 공연을 진행 중인 기획자는 “작품을 제작함에 있어 가장 첫 번째가 공연장 계약이다. 하지만 요즘의 대학로 극장들은 수익만을 바라보는 곳들이 많아졌다”면서 “제작환경과는 너무 다르게 높아만 가는 임대료를 제작사가 고스란히 안고 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높은 임대료는 장기 공연을 하는 오픈런 팀들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하소연했다.

업계에서는 대학로가 진정한 ‘한국의 브로드웨이’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소극장 관계자는 “과거 오픈런 공연이 우후죽순 생겼을 당시엔 작품의 퀄리티 보다 ‘오픈런’이라는 이름으로 가격 경쟁력으로만 승부하는 작품들이 생겨나면서 오히려 시장에 악영향을 끼쳤던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상적인 시장 논리에 따라 본 공연 전에 시범 공연, 즉 트라이아웃 공연을 통해 작품을 다듬고 장기 공연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후에 수요와 공급에 따라 티켓 가격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이후 우수한 공연을 오픈런 공연으로 올리는 식”이라며 “그로 인해 공연장을 옮겨 다니는 데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아껴 공연 개발에 다시 투자할 수 있고, 극장의 브랜드화까지 가능하도록 하면서 수익의 안정화를 꾀할 수 있다. 이는 곧 관객들에게 질 좋은 공연을 보여줄 수 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선순환 효과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이런 시스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기반’ 즉 ‘공연장’이 필요하다. 이미 대학로는 브로드웨이처럼 공연장이 몰려 있어 수익 잠재력이 높은 곳임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주체가 되어야 할 예술인들을 밖으로 내쫓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시금 상업적인 작품, 예술성 있는 작품들의 균형 있는 양질의 성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힘써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