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보호, 금융 쇄신의 출발점

2025-10-13

금융권의 최대 관심사였던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의는 최근 새 정부가 추진을 철회함에 따라 현행 유지로 정리됐다. 금융소비자보호 전담기구 신설이 무산된 점은 아쉬움이 남지만,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과 금융시장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고심 끝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존중한다. 다행히 금융당국 수장들이 금융 행정과 감독의 쇄신을 통해 금융소비자 업무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금융회사들도 보호 강화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국민과 금융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혁신적 방안을 기대하며 몇 가지를 제언한다.

소비자는 금융의 원천이자 주체

금융회사들 사후 처방에 치우쳐

업무 관행·절차·용어부터 손질을

무엇보다 금융 쇄신은 금융의 본질에서 출발해야 한다. 금융업은 금융소비자의 ‘피 같은 돈’을 기반으로 영업하는 산업이다. 은행의 경우 예금이 영업자금의 핵심이자 반드시 상환해야 할 부채다. 2024년 말 S은행의 예수부채비율은 1127%로, 총자산의 73%가 예금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2024년 말 부채비율(27%)보다 41배 이상 높다. 이처럼 높은 부채비율 구조를 가진 금융업은 전통적으로 건전성 관리와 금융시스템 유지라는 금융 안정이 감독의 핵심이었고, 자금의 공급자인 금융소비자보호는 상대적으로 주변에 머물렀다.

금융 안정과 금융소비자보호는 금융의 양대 기둥이다. 두 축이 균형 있게 작동하도록 금융 행정과 감독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 금융소비자가 금융의 원천이자 주체로서 정당한 지위를 회복하고,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가 제도적으로 자리매김할 때다.

또 하나의 금융 쇄신은 금융소비자의 참여와 권리를 보장하는 금융 거버넌스 구축이다. 금융회사의 영업행위 및 금융상품 관련 피해 보상, 금융소비자 권익 증진 활동 등은 ‘금융소비자보호법’에 규정된 금융소비자의 기본적 권리다. 이렇게 법으로 규정된 권리가 현장에서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어 권리의 실효성 확보가 절실하다. 금융소비자가 단순한 의견 제시를 넘어 금융 소비생활과 관련된 금융 정책의 결정과 집행, 감독, 상품 거래, 상환 및 분쟁 조정 등 금융의 모든 영역에서 실질적 이해관계자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금융소비자의 목소리가 제도적으로 반영되는 거버넌스야말로 소비자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소비자 중심 금융의 토대다.

현행 금융소비자보호는 파생상품 불완전판매 등 피해 발생 이후의 분쟁 해결과 금전 보상에 치우쳐 있다. 하지만 진정한 보호는 피해보상에 그치지 않는다. 상품제조, 판매, 거래, 상환, 분쟁조정에 이르는 금융거래 전 과정에서 금융소비자를 중심에 두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관행적으로 사용해온 ‘불완전 판매(Misselling)’란 용어를 ‘불완전 거래(Incomplete transaction)’로 확장하고, 그 개념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금융분쟁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는 불완전 판매는 법적 개념이 아닌 금융 실무용어다. 판매 단계만을 강조하고 자의적 해석의 여지도 크다. 금융거래 전 과정을 포함하는 불완전 거래 개념을 도입해 금융소비자보호 강화 의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금융 현장의 시급한 과제는 금융소비자의 금융회사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금융소비자가 금융회사 대표번호에 전화를 걸면 ARS와 인공지능(AI) 안내를 거쳐 오래 기다려야 상담직원과 연결된다. 디지털금융 확산으로 고령층과 취약계층의 접근성은 더 떨어지고, 금융용어 자체도 쉽지 않다. 일반금융소비자가 흔히 마주하는 현장의 모습이다.

금융회사 경영진은 분통 터뜨리는 금융소비자의 고충을 가슴으로 체험해야 한다. 금융회사의 업무 관행, 절차 및 문서양식을 소비자 입장에서 꼼꼼히 점검하고 서비스 균질화를 위한 노력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 금융회사의 쇄신이다. 고객 사랑을 외치는 홍보가 진정성을 얻기 위해서는 금융 현장 경험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금융감독기구 개편은 무산됐지만, 금융소비자보호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한다면 금융감독체계는 실질적 혁신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금융안정과 금융소비자 보호의 두 기둥 위에 새로운 금융 행정과 감독의 틀을 세우고, 금융소비자가 금융의 원천이자 주체로 존중받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금융 쇄신의 출발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수현 국민대 경영대학 석좌교수·전 금융감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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