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미국에서 두 가지 소식이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시장을 강타하며 투자자들을 흔들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고용시장이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면서 투심이 위축된 것이다. 또 지난달 31일부터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매도세가 4거래일 연속 순유출되면서 14억4680만 달러(약 1조9700억원) 상당의 자금이 빠져나간 것도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직장인들의 퇴직연금(401k)에 디지털자산 투자를 허용하면서 시장이 반대 편으로 움직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이번 행정 명령은 가상자산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부동산, 사모펀드 등 대안 투자를 폭넓게 개방하는 내용이 골자다.
퇴직연금 디지털자산 투자 허용으로 1경2조원 자금 풀려
401k는 미국 은퇴자를 위한 연기금으로, 미국 국세청(IRS) 규정 401k 항목에 정의돼 있어 401k라고 불린다. 그간 위험자산에는 투자 길이 막혀 있었으나 이번 행정 명령을 통해 위험자산 투자의 길이 열렸다.
미국의 은퇴 연금 시장 규모는 43조 달러에 달하며, 그중 약 9조 달러(1경2451조원)가 401k에 보관돼 있다. 이는 전체 디지털자산 시장 시가총액과 맞먹는 수준이다. 13일 기준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2조 달러를 상회한다.
업계 인사들은 일제히 환영했다. 동안 401k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상당 부분은 주식, 채권 등에 투자됐는데 투자 선택지가 다양화되고 기대수익률이 높아지는 효과가 예상되는 탓이다.
마이클 노보그라츠 갤럭시디지털 최고경영자(CEO)는 "401(k)는 정말 어마어마한 자본 풀"이라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사람들이 가상화폐에 접근할 수 있는 창구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버드 참전에 뜨거워진 ETF 시장
여기에 미국의 하버드대도 가상자산 투자에 합류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하버드대는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IBIT)'를 1억2000만 달러(약 1667억원)어치 사들였다.
530억 달러(약 73조원)를 운용하는 하버드대가 비트코인 ETF에 투자하면서 시장이 화들짝 놀랐다. 비트코인은 12만 달러를 재돌파하며 상승했고, 덩달아 이더리움 등 알트코인도 움직였다.
하버드의 이번 움직임은 서프라이즈성 움직임이 아니다. 본지가 HMC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하버드대의 대학 기금을 관리하는 하버드 매니지먼트 컴퍼니(HMC)는 사모주식(Private equity)의 투자 비중을 21년 34%에서 24년 39%로 늘렸다. 반면 부동산·천연자원 비중(20% → 5%)은 크게 줄었다. HMC는 이를 넷제로 흐름과 부동산 익스포져 불안감이 높아짐에 따른 요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외에도 2018년과 2024년을 비교했을 때 헤지펀드 투자 비중도 18%에서 32%로 크게 확대됐다. 위험자산을 높인 HMC는 2021년 30%에 달하는 수익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앞서 아이비리그에서는 공격적인 투자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비트코인 ETF까지 투자하며 위험자산 투자를 확대하는 기조를 그대로 이어갔다. 70조원이 넘는 펀드 규모를 봤을 때 0.2%밖에 되지 않는 수치지만, 그 의미는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하버드와 비슷한 규모의 자금을 굴리는 예일대, 프린스턴대의 참전 가능성도 있다. 한편으로는 현금성 자산 확보라는 해석이다. 대학 기금은 자산 대부분이 대체투자에 묶여 있어 현금 동원력이 떨어진다. 또 장기투자를 놓고 봤을 때도 효과적이라는 판단이다.

올 1분기 부진한 기관투자, 다시 붐 일까
업계 전문가들은 투자연금과 대학펀드까지 디지털자산 시장에 진입함에 따라 부진했던 1분기 ETF 시장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코인쉐어스가 증권거래위원회에 신고된 13-F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5년 1분기 자산운용사들의 비트코인 ETF 보유액은 212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4분기의 274억 달러에서 23% 감소한 수치다.
다만 이번 낙폭은 헤지펀드가 중심이 되면서 나타났다. 코인쉐어스는 보고서를 통해 "헤지펀드의 비트코인 ETF 보유 비중이 41%에서 32%로 감소했다"며 "이는 단기적인 차익 실현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자산운용사들의 보유액은 늘었음을 강조했다. 또 기업들의 비트코인 보유량도 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비트코인 보유량은 올초 168만개에서 지난 5월 18일 기준 198만개로 18.67% 증가했다.
이와 관련해 코인쉐어스 측은 "블랙록을 비롯해 골드만삭스 등 운용사가 ETF를 사들이면서 장기투자 전략이 추세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