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잔] CROWDS

2025-08-15

햇살이 뜨겁다 못해 눈이 부시다. 수영복 차림이어도, 거리낌 없이 애정을 표현해도 누구 하나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곳. 무대 앞은 이미 열기와 함성으로 가득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독일 라인강 기슭의 로렐라이 절벽 아래에 세워진 야외무대는 유럽 록 팬들의 성지였다. 하드록과 헤비메탈, 클래식록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음악과 에너지를 나누려는 군중이 강가의 절벽 아래로 몰려들었다.

1988년 여름, 독일 쾰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 볼프강 주어본은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 대신 햇살과 환호 속에 뒤엉킨 관객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치·스포츠·종교·관광·오락 등 목적이 무엇이든 군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향했던 그는 성격이 전혀 다른 이벤트 속에서도 결국 ‘자극의 홍수’에서 매력을 찾는 군중의 모습을 담았다. 훗날 ‘CROWDS’ 시리즈의 한 장면이 된 이 날 역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섰지만, 그의 시선은 무대 아래로 향했다. 음악과 함성, 햇살 속에서 ‘보여지는 풍경’이었던 사람들은 그의 사진 속에서 ‘스스로를 소비하는 풍경’이 된다. 소비되는 이미지와 경험이 뒤엉킨 집단적 무대, 기 드보르가 말한 “스펙터클의 사회”처럼.

코로나19는 대중을 끌어들이는 스펙터클에 잠시 종지부를 찍었다. 들뜬 대중문화가 강제로 멈춘 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CROWDS’를 탄생시켰다. 봉쇄 기간 그는 수십 년간 보관만 해오던 네거티브 필름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1980~90년대 소비와 여가의 풍경을 기록한, 잊고 있던 컬러사진들을 발견했다. 그 사진들은 명확한 메시지의 ‘결정적 순간’ 대신 인간 중심의 초상을 포착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직선적인 서사로 수렴되지 않고 서로 다른 의미와 맥락이 공존하며 관객을 그 틈과 겹 사이로 이끈다. 그리고 사진가는 ‘연상’의 기술을 관객에게 청한다. 음악과 함성, 공기를 가르는 열기, 그리고 서로를 북돋우는 에너지… 생각해 보면 1990년대 독일도, 2025년 한국도, 음악은 군중의 마음을 파도처럼 일렁이게 하는 매혹적인 자극이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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