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투어

2024-07-04

김길웅, 칼럼니스트

버스를 타면 심신이 편안하다. 이동하는 큰 집이다. 큰 차가 내 소유 같다. 매번 버스에 타면서 기사에게 “수고하십니다.” 인사를 한다.

인사는 즐겁다. 답례가 없어도 좋다. 2인석으로 돼 있지만, 운전석 반대편으로 셋은 1인석이다. 그 자리에 앉으면 자그마치 자가용에 앉은 기분이다. 맨 앞 좌석은 높직해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진다. 차를 거느리며 가는 느낌이다.

버스 쪽에 기울어 있다. 느리게 천천히 가도 된다. 따지고 보면 완급의 차이란 별것 아니다. 나중에 길을 가고 돌아온 뒤에야 안다. 사람의 일이란 다 그런 것이다. 애초 버스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수첩을 꺼낸다. 버스를 타면서 깃든 습관이다. 무얼 몇 자 적을 때도 있고, 그냥 호주머니로 들어가기도 한다. 차창 너머 내다보는 거리의 동정,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며 그 분망한 걸음걸이, 때로는 눈에 들어오는 어제와 다른 변화의 발견이 흥밋거리다.

새로 짓는 건물에 눈이 가면 뒤돌아보며 집중한다. 그것이 도시 디자인과 조화로운지, 눈여겨본다. 전문적 지식이 없어 수박 겉핥기식인 눈요깃감이긴 하나, 건물은 도시의 일부이면서 전체이고 변화는 성장을 의미한다. 오래된 시간의 무게를 털고 일어서는 도시의 모습에 빼앗긴 시선이 흥겹다.

거리를 지나며 눈에 들어오는 바다는 제주에서나 즐길 수 있는 풍광이다. 어느 위치에선 바다가 파도로 일어나 둘둘 말려온다. 앞으로 흘러올 것 같다. 버스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천연덕스러운 풍경이다.

버스에 타면 갑자기 섬이 된다. 너나없이 차를 가지고 사는 시대다. 전후좌우를 돌아봐도 지면이라곤 한 사람도 없다. 노인이거나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속 보일 일도 전혀 없다. 말 한마디 나눌 상대가 없으니 영락없이 도심 가운데 내가 섬이 돼 있는 느낌이 든다. 상대가 없으면 뭔가 채우려 오감이 작동하니 잇속이 없지 않다. 메모하는 여유도 거기서 나온 건지 모른다. 오늘도 수첩에 메모 몇 줄이 이어지고 있다. 눈에 들어오는 것에 대한 느낌만 아니다. 머릿속에 이는 상념들이 내려앉는다.

이탈했다. 오늘만이 아니다. 버스를 탔다 종종 저지르는 혼란이다. 행선지를 한참 벗어나 있는 무심함. 오늘은 특별한 걸음을 하고 싶었다. 내 30대에서 40대의 거진 반 살았던 옛집을 보고 온다는 것이 그만 버스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돼 남쪽 등성마루를 내달리고 있지 않은가.

환승하고 이른 옛집 앞엔 낯선 차가 세워 있고, 대문이 무겁게 닫혀 있다. 서성이다 돌아섰다. 무엇에 발목이 잡혔던지 걸음이 천근이었다.

이제 쉰 줄에 이른 두 아들, 그때 중학생이던 걔들이 대문간에 나와 무심코 돌아서는 나를 불러 세울 것만 같았다. 환상이었고 나는 이미 버스길에 나와 있었다. 추억을 더듬어 본 것으로 오늘 하루가 멋쩍지 않았으니 됐다.

버스를 타고 오가며 점심을 잊었다. 정류소에서 내려 고샅을 오르는데 와락 시장기가 몰려온다. 머리가 핑 돈다. 어서 오르막을 올라야지. 가까운 사람에게 한 끼 신세를 져야지.

“나왔소. 밥 좀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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