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차사회 한국. 일본인이 한국 하면 떠올리는 인상 중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격차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때마다 속으로 말한다. “너희 나라도 만만치 않아.”
새로운 연도가 4월부터 시작되는 일본. 매년 2월부터 3월 사이에 노사 간의 임금 협상이 진행된다. 2월에 노동조합이 사측에 임금 인상안을 제시한다. 3월이 되면 노조의 요구에 대해 사측이 대답을 내놓는다. 봄에 진행된다는 의미에서 춘투라고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많은 대기업이 노동조합의 인상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노동조합의 요구보다 높은 인상률을 제시하는 회사도 있었다. 일본 최대의 노조 연합인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에 따르면 평균 임금인상률은 5.4%였다. 33년 만에 5%대를 기록했던 작년에 이어 높은 인상률이다. 렌고의 요시노 도모코 회장은 “고수준의 임금인상률을 유지하고 있다”며 협상 결과를 반겼다. 임금 인상의 흐름은 일부 중소기업으로도 이어졌다.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인상률은 5.9%를 기록해 33년 만에 5%를 넘었다. 반길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의 지갑이 두툼해진 것은 아니다. 높은 임금인상률에도 불구하고 실질임금은 2022년부터 3년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이 “역사적인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임금을 올려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임금 인상이라는 흐름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100만여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일본 전체 노동자의 36.8%에 달한다. 봄이 되면 이들의 ‘비정규 춘투’도 시작된다.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을 인상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
지난 2월, 일본 최대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건물 앞에,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그들의 모습이 있었다. 일하는 곳이 서로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 2023년부터 시작한 ‘비정규 춘투’의 현장이다. 이들은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일괄적으로 10%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평균 임금인상률은 3% 전후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이마저도 임금 인상에 응하는 기업은 일부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2023년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22만6600엔으로 정규직의 평균 임금(33만6300엔)의 67%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 10여년간 격차는 고작 7% 줄었다. 일본은 노동법을 개정해 2021년부터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임금 격차는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이 일본의 현실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떨까?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38.2%로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는 54%였다. 비정규직 비중이 역대 2번째로 높았고 임금 격차는 역대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고 한다. 한국의 현실이다. 한·일 양국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현실이다.
‘격차사회 한국’은 일본 안에도 있다. 임금 격차를 해소할 방안을 한·일 양국이 같이 모색해 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