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 40주년 ‘스튜디오2000’ 허봉희 대표] ‘순간’ 잡으려는 책임감, 프로정신으로 버텼다

2025-04-25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을 기록으로 남겨 주는 보람

디지털 시대, 사진 장인 고집

“사진은 시간을 담는 기술”

LA한인타운에서 사진 스튜디오의 명가라고 불리는 ‘스튜디오 2000’이 5월 초에 개업 40주년을 맞는다.

역사가 길기도 하지만 이제는 몇 곳 남지 않아 젊은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스튜디오를 처음부터 이끌어온 사진가 허 봉희(사진) 대표를 최근 만났다.

현재 스튜디오가 있는 곳은 웨스턴 길 코리아타운 플라자 2층이다. 1985년 올림픽 길에서 처음 시작했는데 그 동안 버몬트와 8가, 윌셔와 뉴 햄프셔의 ‘구 윌셔 갤러리아’까지 따져보면, 4번째 장소다. “사진을 아직도 전문 사진가에게 맡겨야 하나.” 이런 질문이 무리도 아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세상이니 말이다.

지난 40년 동안 사진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사진은 아무나 찍는 것으로 바뀌었다. 인생의 한 세대를 잡는 30년 보다 긴 스튜디오 2000의 40년은 아날로그 필름을 쓰는 카메라부터 디지털 사진, DSLR, 포토샵으로 이어지면서 오늘에 이른다.

그동안 사진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새로 나온 기술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이미지 소프트웨어 포토샵을 다루는 것은 모두 도사급이 됐다. 그렇지 못한 사진가들은 이제 모두 현장에서 떠난 상태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필름으로 찍어서 사진 공장에 맡겼습니다. 그러다가 디지털로 바뀌면서 큰 쓰나미가 왔습니다. 더 이상은 스튜디오 사진을 찍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다 보니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몇 시간 만에 수백 장을 찍을 수 있다.

익숙한 사람들은 사진을 바로 고르고 보정하고 SNS에 올릴 수 있지만 나머지 사진은 메모리 한 구석에 처박아 놓는다.

인화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경우가 별로 없는 세상이다. 찍기는 찍지만 인화를 위해서 하는 후처리 작업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됐지”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돌잔치, 결혼식 같은 가족 행사나 각종 기념식, 미 전역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가족 사진 등 중요하고 또한 순간을 놓치면 큰 손해를 보는 사진은 전문 사진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포토샵 같은 후처리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겠다는 책임감과, 수 많은 경험을 통해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 프로페셔널리즘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도 허 대표는 디지털 사진과 싸움을 하고 있다. 우선, 트렌드가 변했기 때문이다. 웹사이트에 올려지는 소프트한 사진이 유행하고 있다. 반면 허 대표는 의미 있고 기록이 중요한 ‘하드한’ 사진을 포기하고 있지 않다.

60대, 70대 고객들이 원하는, 액자 사진은 아무래도 무겁다. 그래서 매일 젊은 아티스트와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사진 속에서 젊어지려는 사람들의 무리한 요구 때문이다.

그는 “70대가 포토샵 덕분에 50대로 만들려면 30분이면 끝난다”며 “하지만 70대가 60대로 보이는 것은 1시간 이상 붙들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하는 대로 쉽게 짧게 넘어가도 되지만 허 대표는 원칙과 선을 넘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중에 고객들이 후회할 선택을 설득하는데 별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허 대표는 스튜디오에 대형 사진용 프린터를 3대 갖고 있다. 액자에 넣을 수 있는 큰 사진은 공장에서 인화해 오는데 허 대표는 원하는 색깔을 중히 여겨 직접 프린트하기 위해서 장비에 큰 투자를 할만큼 고집도 있다.

허 대표가 사진으로 직업을 삼은 지 43년이나 됐다. “큰 돈을 벌지도 못했고 기술 발달로 공부할 것이 많아서 40년 내내 매우 어려웠다”고 회상한 그는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을 기록으로 남겨 주는 일이 보람과 사명감을 갖고 할 만한 일이었기에 후회는 없다”고 밝혔다.

허 대표는 또 “5년 후에는 은퇴하여 그동안 못했던 선교지와 풍경 사진을 많이 찍고 싶다”고 덧붙였다.

장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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